대법원 선고에서 ‘기사회생’해 서울고법 재판을 다시 받게 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대법원 파기환송 후 서울고법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낸 것과 비슷한 절차를 이 회장이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10일 이 회장에게 특별법보다 법정형이 낮은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유리한 정황이다. 하지만 유죄로 인정된 별도의 조세포탈·횡령액만 366억원에 달하는 점 등은 불리하다. 실제 구속수감 기간이 107일에 불과한 점도 집행유예 선고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2013년 7월 1일 수감된 후 대법원 선고까지 대부분을 서울대병원에서 보냈다. 2년2개월(802일) 동안 실제 수감기간은 107일(13.3%)에 불과하다. 1심에서 신장이식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고, 건강을 이유로 이를 7차례 연장해 왔다. 지난달 14일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별세해 자신이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경우 2011년 1월 회사 자산을 지출해 위장계열사 빚을 갚아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2심에서 이 회장과 같은 징역 4년,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1심에서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해 145일을 제외한 기간을 병원에서 보냈고, 배임죄 부분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것도 유사하다. 김 회장은 대법원 선고에 따라 배임액수가 1797억원에서 1585억원으로 줄었고 서울고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구체적인 배임액수가 줄어든 건 아니라는 점에서 김 회장 사례와 다소 차이가 있다. 다만 법정형이 낮은 형법상 배임을 적용받게 됨에 따라 형량이 징역 3년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한 조세포탈 액수가 251억원으로 거액인 점을 고려하면 집행유예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앞서 2심은 이 회장에 대해 “2008년 세무조사를 받고 또 세금을 포탈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었다. 김 회장의 혐의가 대부분 배임죄에 집중돼 있던 것과는 다른 부분이다. 100일 남짓한 수감기간을 고려할 때 이 회장이 충분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지도 변수다.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후 “재벌 총수에 대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양형 공식이 부활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던 것도 법원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법원은 앞서 기업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게 경영 공백 등을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공식처럼 선고해 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대법, 이재현 파기환송] 집행유예 받은 김승연 절차 밟나
입력 2015-09-11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