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재현 파기환송] “배임혐의, 가중처벌 조항 적용할 수 없다”

입력 2015-09-11 02:32
CJ그룹 직원들이 10일 서울 중구 사옥으로 들어가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건을 파기환송했다.연합뉴스
이재현(55) CJ그룹 회장의 혐의 중 대법원이 항소심과 다르게 본 부분은 ‘배임’이다. 그러나 적용 법조항을 문제 삼았을 뿐 유무죄 판단을 뒤집지는 않았다.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극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배임액 산정불가→형법 적용해야’=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가 10일 징역 3년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파기한 이유는 배임혐의에 적용된 법조항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2006∼2007년 팬 재팬(Pan Japan)이라는 회사 명의로 일본 도쿄에 있는 빌딩 2개를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39억5000만엔(한화 309억원)을 대출받으면서 CJ그룹 일본법인이 연대보증을 서도록 했다. 검찰은 이를 CJ그룹 일본법인에 대한 배임행위로 판단했다. 1·2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배임에 대한 유죄 판단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한 점을 문제 삼았다. 특정경제범죄법 3조는 배임액수에 따라 형량을 가중한다. 50억원 이상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1·2심은 이 회장의 배임행위를 이 구간에 적용했다.

반면 대법원은 팬 재팬이 대출금을 어느 정도 갚을 수 있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변제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받은 대출이라면 대출금 전액은 팬 재팬이 얻은 이득으로 잡힌다. 그러나 변제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면 팬 재팬이 배임으로 얻은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설명이다. 때문에 대법원은 배임을 통한 이득액을 기준으로 삼는 특경법 3조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무죄라는 게 아니라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형법상 배임죄 처벌조항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특경법보다 처벌 수위가 낮다. 이 회장 입장에서는 유리한 판결이다. 다만 항소심이 유죄로 판단한 조세포탈·횡령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에 감형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용처 모르는 비자금엔 소극적=이 회장 혐의 중 가장 큰 덩어리였던 603억원 비자금 조성에 대해서는 항소심의 무죄 판단이 유지됐다. 검찰은 1998∼2005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횡령으로 판단해 기소했다. 비자금을 이 회장이 개인적 용도로 썼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못했다. 이 회장 측은 접대비, 임직원 격려비, 경조사비 등 비자금을 회사를 위해 썼다고 주장했다.

1·2심은 판이하게 다른 결론을 내렸다. 1심은 비자금이 이 회장의 금고에 다른 자금과 함께 보관된 점을 들어 조성 시점부터 ‘돈을 빼돌리겠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정상적인 회계처리가 힘든 접대비·선물비 등은 결국 회사운영과 관계가 없는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회사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반면 2심은 비자금에 대해 “근절돼 마땅한 것”이라면서도 “회사의 원활한 운영과 임직원의 사기진작 등을 위해 그동안 사용돼 온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회장은 1심 징역 4년에서 1년을 감형 받았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비자금이 기업의 오너 개인을 위해 사용됐다는 점을 검찰이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비자금 조성행위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 게 최근 대법원의 판례 흐름이기도 하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비정상적인 회사 자금 운용을 용인하는 꼴”이라며 “비자금 조성행위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