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르포] 소리 잃은 사람들, 세상으로 실어 줄 ‘붕붕카’ 기다려요

입력 2015-09-11 02:34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서울 마포구 농인들이 지난 2일 서울 토정로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이곳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는 수화통역사의 손을 바라보고 있다. 이병주 기자

“20분 뒤에 출발할게요.” 인솔자가 출발을 알리자 수화통역사 김광길(33)씨의 손이 바빠졌다. 출발을 알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聾人)’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농인은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게 돼 말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모두 수화를 사용한다. 후천적으로 청력을 잃은 사람은 수화를 안 해도 의사 표현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선천적 장애인들은 따로 농인이란 표현을 쓴다고 했다.

김 통역사는 농인들의 시야로 들어가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 마침내 모두가 그를 바라보게 되자 ‘고요한 대화’가 시작됐다. 수화로 오늘 일정을 전달했다. 농인들은 김 통역사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손은 바깥세상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지난 2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7번 출구 앞에 농인 20명이 모였다. 서울시농아인협회 마포구지부 소속인 이들은 마포구청에서 마련한 ‘양화진 근대사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나왔다. 보라색 모자와 선글라스에 ‘셀카봉’까지. 옷차림부터 설렘이 가득 묻어났다. 절두산 순교성지를 지나 잠두봉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유도를 답사하는 3시간 내내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농인 부부 이준호(가명·49) 김가연(가명·39·여)씨는 손을 꼭 잡고 선유도를 걸었다. 부부는 오랜만의 야외 데이트에 들뜬 표정이었다. 이씨는 어렸을 때 수화교육을 받지 못했다. 장애를 부끄럽게 여기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무살이 넘어서야 한글을 접했고 서른이 돼서야 수화를 익혔다. 수화를 배우던 복지관에서 손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내도 만났다. 말과 글 없이 사는 동안 무시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

김 통역사의 손끝에서 수많은 단어와 문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 손짓을 통해 눈앞에 서 있는 비석은 무엇인지, 19세기 천주교 박해의 역사가 어땠는지 같은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두봉 선착장에서는 양화나루의 옛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김정미(가명·44·여)씨는 수화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 사진이 한강의 옛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농인들은 저마다 어릴 적에 봤던 한강 모습을 놓고 ‘수화 수다’를 떨기도 했다.

김 통역사는 “농인은 수화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일종의 소수민족이다. 시각 언어라는 다른 형태의 언어를 사용할 뿐 장애가 아니다”고 했다. 수화는 한글과 전혀 다른 문법체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농인들에게 한글은 ‘제2외국어’인 셈이고, 그래서 한글을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날 합정역에 모인 것도 김 통역사가 일일이 영상통화를 걸어 ‘출발역부터 몇 번째 역’이라고 수화로 설명했기에 가능했다.

‘소리 없는 세상’에선 간단한 일상조차 쉽지 않다. 시야가 꽉 막힌 만원버스나 지하철에서 안내방송을 듣지 못하면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기 십상이다.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도 설명을 들을 수 없다. 한글 안내가 있어도 글을 읽는 게 쉽지 않다. 김씨는 평소 아이를 학교에 보내거나 장을 보러 시장에 가는 것 외에는 밖으로 돌아다니기가 두려워 답답하다고 했다. 행정 업무를 보거나 가전제품 수리를 요청하는 등 간단한 일도 ‘장벽’이다.

‘들리지 않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답사를 하던 중 농인들의 휴대전화가 몇 차례 울렸다. 전화는 김 통역사가 대신 받았다. 그는 “음성 언어만 없어도 이렇게 불편한 점이 많다”며 휴대전화를 다시 돌려줬다.

답사를 마친 농인들은 ‘왁자한’ 점심시간을 가졌다. 밥 먹으랴, 얘기하랴 저마다 두 손이 바삐 움직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들에겐 떠들썩한 오찬이었다.

이두세(48) 서울시농아인협회 마포구지부장은 “농인들은 수화가 제공되는 프로그램에 목말라 있다”고 했다. 회원 80여명의 마포구지부는 이런 갈증을 풀기 위해 ‘사랑의 붕붕카’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직접 승합차를 마련해 자유롭게 나들이를 하기 위해서다. 2500만원을 목표로 시작한 모금은 2년이 지나서야 1000만원을 겨우 넘겼다. 모금액의 90% 이상은 승합차의 필요성을 직접 느낀 농인들의 기부였다.

이 지부장은 “아직 절반도 못 모았지만 농인들에게 새 세상을 열어줄 사랑의 붕붕카가 달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