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한국기업, 위기방치 땐 투기등급 강등 우려”… S&P의 경고

입력 2015-09-11 02:54

저성장(매출 감소), 낮은 수익성, 제품 매력도 저하, 낮은 지배구조 투명성.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 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국제 신용도가 투기등급(투자 부적격)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금융센터는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S&P를 초청해 ‘저성장·고변동성 환경에서 국내 신용시장 트렌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S&P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신용 평가를 총괄하는 권재민 전무는 “한국 기업 신용도가 과거보다 2단계 하락해 투자등급 최하단에 위치해 있다”며 “중국 기업과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데다 일본 기업도 환율(엔화가치 하락)을 발판으로 수익성을 회복하고 있어 한국 기업은 샌드위치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S&P가 평가한 한국 기업 신용도는 2009년 말 BBB+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BBB-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S&P의 신용평가 체계상 투기등급(BB+ 이하) 직전이다.

한국 기업의 성장세가 지지부진하다는 증거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2010년 상위 150개 기업의 매출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해 한국 기업 매출은 130으로 3년째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중국 기업은 150까지 치솟았다. 2012년만 해도 100을 간신히 넘겼던 일본 기업은 지난해 120선을 빠르게 회복했다.

이는 스마트폰(삼성전자), 자동차(현대차) 등 한국의 주력 제조업이 위기를 겪는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권 전무는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이 삼성과 비슷한 품질을 보장하면서도 40% 싼 가격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려 중국 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급락하고 있다”며 “자동차도 중국에서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유럽·일본차보다는 프리미엄 이미지가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하면 국내 상위 대기업의 현금 흐름이나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한 상위 150개 기업은 최근 5년간 순차입금이 4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권 전무는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들이 2년 후 기업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현재의 신용도가 저하돼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S&P는 또 최근 중국 금융시장의 위기가 중국 은행권에 부담을 줘 금융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라이언 창 S&P 중국·한국 금융기관 신용평가본부장은 “중국 기업부문이 은행에 부실 채권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며 “신용거래 부담으로 은행 수익도 답보상태”라고 지적했다. 국내 은행에 대해서도 “순이자마진(NIM)이 지난해 1.8%에서 올 상반기 1.6%로 떨어지는 등 수익성 하락 위험이 높다”며 “가계부채 상승도 잠재적 위험요소”라고 덧붙였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