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기기증원(KODA) 홈페이지 한쪽에는 ‘하늘나라 편지’라는 코너가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고귀한 생명을 나눠주고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남은 가족이 그리움의 편지를 띄우는 곳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함께 장기 기증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기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이 올라온다.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읽다가 한 글귀가 눈길을 잡았다.
“제가 세상을 떠날 때는 3일 정도 뇌사 상태에 있다가 저의 몸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주고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송종빈씨다. 얼마 전 장기 기증자 가족과 수혜자, 의료진 등으로 구성된 ‘생명의 소리 합창단’ 창단식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털어놓은 얘기들이 뇌리에 오래 남아 있다.
올해 육순인 그는 젊은 시절 은행 임원을 지내는 등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2년 전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이 일어났다. 고이 키운 딸이 서른넷 꽃다운 나이에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명문대학을 나와 기자와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불우한 이웃을 도왔던 딸은 그에게 자랑거리였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딸을 보며 기적을 바랐지만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생전 딸이 원하던 장기 기증을 하기로 결정했다. 딸이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됐다.
딸이 떠났다는 상실감에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고 그리운 마음이 들 때마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기도 수차례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에게 새 삶을 베풀고 간 딸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마음으로 슬픔을 달랬다. 그리고 딸이 그랬던 것처럼 나눔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는 평소 딸이 아끼던 1500여권의 책을 강원도 산골학교에 기부했다. 뇌사 시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각종 행사를 찾아다니며 생명 나눔의 숭고함을 설파한다.
장기 기증을 약속한 뒤부터는 건강한 육신을 남겨주기 위해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내 몸을 남에게 주고 싶다 해서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의 축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그의 말은 감동으로 남았다.
물론 송씨 같은 사례는 흔치 않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장기 기증을 선뜻 결심하기란 쉽지 않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지난해 뇌사 장기 기증자는 446명이다. 1445개의 장기가 이식돼 새 생명의 불씨가 됐다. 그런데 뇌사 추정자로 통보된 1615명 가운데 35%(414명)는 ‘가족 반대’ 등을 이유로 최종 기증을 거부했다.
우리나라 인구 100만명당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8.4명이다. 스페인(35.1명) 미국(25.9명) 영국(20.8명)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반면 장기 이식 대기자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 10일 현재 2만6749명에 달한다. 매일 3.2명의 환자가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있다.
어떤 신부님의 기도 제목을 들은 적 있다. 그 신부님은 만약 생을 끝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꼭 뇌사에 빠져 고통받는 이들을 살리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고 한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생명을 나눠 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것이다. 송종빈씨처럼 말이다.
‘잘 사는 것’이란 뜻의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존엄한 죽음’이란 의미의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육신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에게 아름다운 선물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웰다잉이 아닐까.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웰다잉
입력 2015-09-11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