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48조 5024억원의 건보료를 거둬 43조 9155억원을 지출, 4조 586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누적 흑자규모는 12조 8072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다. 현 건보료 부과체계를 혁신하지 않을 경우 적자 전환은 시간문제라는 게 일치된 분석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2003년 4710만 3000명에서 지난해(6월 말 기준) 5014만 2000명으로 6.5% 느는데 그친 반면 보험료를 한 푼 내지 않는 피부양자는 같은 기간 1602만 9000명에서 2054만 5000명으로 무려 28.2%나 증가했다. 건보료를 내는 사람보다 피부양자가 더 많이 늘면 건보재정에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더욱이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의료비 또한 급증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건보재정이 곧 적자로 돌아서 적자 규모가 2020년 6조 3000억원, 2060년 13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3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발족시켜 올 초 개혁안을 내놓으려 했으나 연말정산 파동 속에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집을 세 채 이상 갖고 있는 68만여 명이 여전히 단 1원의 보험료도 내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피부양자 제도 탓이다. 수십억∼수백억대 재산가라도 금융·연금·기타소득이 각각 연 4000만원 이하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기준이 총소득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별기준에만 부합하면 소득이 1억원이 넘어도 피부양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정부도 종합소득이 연 2000만원을 넘길 경우 지역가입자로 전환시켜 보험료를 부과해 무임승차자를 줄이기로 개혁안을 마련하려했던 것 아닌가. 소득에 대한 부과는 늘리는 대신 소득 외 부과 요소는 축소 또는 폐지하는 정부의 건보 개혁 방향은 형평성 강화 차원에서 옳다. 그럼에도 정부가 올 상반기까지 내놓겠다던 개혁안을 아직까지 뭉그적거리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적자로 돌아서야 행동에 나설 건가.
[사설] 불공정 건보 부과체계, 정부 무디거나 무능하거나
입력 2015-09-11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