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개혁과 무두질

입력 2015-09-11 00:10

개혁(改革) 바람이 곳곳에서 거세다. 노동, 금융, 공공, 교육 4대 개혁은 박근혜정부 후반기의 핵심 의제가 되면서 정책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개혁의 유의어인 혁신을 둘러싸고 내부에 돌풍이 몰아치고 있다. 악화된 경영환경에 맞닥뜨린 기업들은 개혁을 통해 스스로 활로를 찾느라 부산하다. 관심이 쏠린 노동개혁은 정국의 뇌관이 될 듯하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 밀어붙이고 있다. 야당과 노동계는 불퇴전의 각오로 맞선다.

개혁의 원뜻은 ‘고칠 개(改), 가죽 혁(革)’, 즉 ‘가죽을 고친다’이다. 이어령은 저서 ‘뜻으로 읽는 한국어사전’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이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혁(革)은 짐승의 생가죽인 피(皮)를 벗겨 통째로 널어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라고 했다. 글자의 위쪽이 짐승의 머리고, 가운데 중(中)자 모양이 몸뚱이고, 좌우로 뻗친 일(一)자는 꼬리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피(皮)를 옷이나 구두를 만들 수 있는 상태인 혁(革)으로 바꾸는 ‘가죽을 다듬는 일’이 개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개혁은 ‘가죽 벗기기, 기름 빼기, 펴서 말리기’의 3단계를 거친다고 덧붙였다. 특히 기름을 빼는 과정인 무두질은 개혁의 성패가 달린 결정적 도정이라고 했다. 기름기가 가신 후에도 가죽이 딱딱해지지 않고 부드러워지도록 쓸고 두드리는 무두질을 거의 무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쉼 없이 땀을 쏟아야 마침내 탄력이 생기고 빛이 나는 가죽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실패하는 개혁은 십중팔구 인내를 요구하는 무두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정부가 너무 조급해 보인다. 노동 부문은 ‘개혁 중의 개혁’으로 여겨지는 만큼 오히려 대화와 협상이 긴요하다. 절박함이 이해는 되나 노사정위의 협상타결 시한까지 정해놓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개혁의 원래 의미와도 어긋난다. 마치 무두질도 하지 않고 가죽을 다듬는 격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