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습니다. 마침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도 피하여 그냥 지나쳤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주막에 데려다가 끝까지 돌보아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현상은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이요, 성령의 은사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세 종류 사람의 사랑을 보겠습니다.
첫째, 강도입니다. 온도로 치면 영하의 사랑입니다. 남의 사랑과 행복을 강탈하는 무리입니다. 강도는 사랑을 주는 이가 아니라 빼앗는 이입니다. 둘째, 제사장과 레위인입니다. 0도의 사랑입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을 보면서 둘 다 피하여 그냥 지나쳤습니다. 우리가 현대판 제사장, 현대판 레위인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셋째, 사마리아인입니다. 영상의 훈훈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마리아인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인의 사랑을 살펴보면 첫째, 정성을 다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우선적으로 정성을 다해 사랑부터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여행길을 멈추고 강도 만난 이와 하룻밤을 같이 지냈습니다. 예수께서도 가장 중요한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여리고에서 사랑 받기 원하는 삭개오와 하룻밤을 같이 지내셨습니다.
둘째, 물질을 투자합니다. 가진 것을 다 주며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자기의 비상약인 기름과 포도주를 다 줬습니다. 자기 짐승을 제공했습니다. 여행비도 내줬습니다. 주막 주인에게 더 들어간 비용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셋째, 시간을 투자합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일단 생명은 건졌으나 가족에게 인계한 것도 아닙니다. 다시 돌아와 비용을 더 주겠다고 주막 주인에게 약속했습니다. 주인은 더 받을 수 있으니 안심하고 최선을 다해 보살폈을 것입니다. 변함없는 사랑,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넷째,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에게는 멸시천대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 미움을 사랑으로 갚았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 주님은 천국을 버리고 성육신하셔서 인간에게 오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주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분이기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강도 만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행함입니다.
서종표 목사(군산중동교회)
[오늘의 설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자
입력 2015-09-11 00:27 수정 2015-09-11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