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며느리한테도 쉿? 영업비밀·인재까지 나눠쓰는 시대… 진화하는 ‘공유경제’

입력 2015-09-11 02:01

안 쓰는 물건을 나눠 쓰고, 필요 없는 공간을 대여해주고…. ‘소유의 시대’를 넘어 ‘공유의 시대’가 확산되고 있다. 서로 빌려 쓰는 경제 활동을 뜻하는 ‘공유 경제’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가 2008년 처음 사용했던 공유 경제 개념은 이제 물건 공유를 넘어 인력·지식 등 무형의 자산 공유로 확대 중이다.

남는 인력을 공유하는 ‘인재 공유’

유휴 인력을 공유해서 쓰는 개념이 등장했다. 구직자와 업체를 연결해주던 기존 인력중개사이트와는 다른 개념이다. 소속은 원래 회사에 두고, 일정 기간만 ‘빌려 쓰는’ 방식이다.

대기업과 국세청 등 정부기관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해 온 웹에이전시(웹개발사) ‘퍼니피플’은 지난달 인재공유 솔루션인 ‘퍼니피플 서비스’를 선보였다. IT 업체는 단기간의 발주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 기간 내에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기술을 가진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대부분의 업체는 프리랜서 인력을 일시 계약직으로 고용하거나, 기존에 알던 업체에 연락해 인재 추천을 받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 특성상 프로젝트 수행 이후 사후 관리가 어렵고, 중간에 프리랜서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퍼니피플의 인력 중개 솔루션은 단순히 프리랜서 인력을 중개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 소속된 인력을 파견하는 형식이다. 발주사와 수행사가 책임을 지고 계약을 맺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계약 기간 중간에 해당 직원이 연락두절 될 우려도 없다. 재직증명서 뿐 아니라 자격증, 기술등급확인서 등을 퍼니피플이 직접 확인해 검증된 인재를 공유토록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사가 유휴 인력인 B씨를 솔루션에 등록하면, 일정 기간 프로젝트에 참여할 인력을 구하는 C사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B씨가 과거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면 해당 프로젝트와 맞는 인력인지를 판단한 뒤 C사가 인력을 선택하게 된다. B씨에 대한 인건비는 A사가 지급하고, C사는 B씨와 함께 일한 비용을 A사에 제공한다. 퍼니피플 윤선희 대표는 10일 “인맥을 바탕으로 개인 간 인력 공유를 하던 1세대 공유경제 방식을 지나, 2세대가 프리랜서를 연계해주는 식이었다면 소속된 인력을 말 그대로 ‘빌려 쓰는’ 방식은 3세대 공유경제인 셈”이라고 말했다.

특허·기술도 ‘공유와 개방’으로 전환

공유경제의 기본 정신은 소유의 개념을 전환해 사회적 나눔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기술은 나눠 쓰거나 빌려서 쓰는 개념이 아닌, 개발자의 독점권을 법적으로 엄격하게 보호해 온 대상이었다. 기술이 노출될 경우 기업의 영업기밀과도 연관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 역시 ‘기술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이나 공공연구소들을 중심으로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 대기업 등은 자사가 보유한 기술과 특허를 무상으로 공유해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경쟁사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방어용으로 획득해 놓은 특허가 많다. ‘유휴 기술’인 셈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쓸모가 없어진 기술들도 많다. 이 중 일부를 협력사나 일반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에 무상 제공해 추가 개발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인력이나 자금을 대량 투입하지 않고도 개발 단계를 상당부분 앞당길 수 있다. 대기업 역시 기술을 이전한 기업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고 자사가 보유한 제품과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가 개방한 2987개 기술을 중소·중견 기업에 무상 이전한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중소기업 제품에 적용하기 쉬운 오디오와 비디오, 모바일 분야 등 818개 기술을 우선 공고한 뒤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7일 기준으로 SK하이닉스가 352건, LG디스플레이가 257건, LS산전이 290건의 우수 기술을 중소·중견 업체에 이전한 바 있다.

‘걸음마’ 중인 한국형 공유경제 기업들

공유경제를 내세운 글로벌 기업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남는 방을 여행객에게 빌려주고 돈을 버는 서비스를 내세운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255억 달러(30조7100억원)에 달한다. 세계적 호텔 체인인 힐튼(276억 달러)과 비슷한 규모인데다 이미 메리어트(209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뛰어 넘었다. 유사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 역시 대표적인 공유경제 서비스 기업이다. 기업가치는 500억 달러를 뛰어 넘고, 전 세계 150여개에 진출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25년까지 세계 공유경제 시장이 3350억 달러(403조44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토종’ 공유경제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카 셰어링 업체 ‘쏘카’와 ‘그린카’는 차량을 분·시간 단위로 빌려 쓰고 돈을 지불하는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7월 기준으로 쏘카 보유 차량은 3000여대를 넘어섰고 회원수는 95만명에 달한다. 한옥 숙박 특화 서비스를 내세운 숙박공유 업체 ‘코자자’도 ‘한국판 에어비앤비’를 꿈꾸는 국내 업체다. 이밖에도 한 달 커피 값에 사무실을 임대해 주는 ‘스페이스 노아’, 비어있는 내 집 앞 공간을 주차 공간으로 빌려주는 서비스인 ‘모두의 주차장’ 등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공유경제 관련 서비스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영역의 경제 활동으로 떠오르면서 관련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적용되고 있는 법과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우버는 한국에서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는 국가가 면허를 부여한 자에게만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쏘카와 그린카의 경우 운전사를 고용하지 않는 형태지만 국내법에 따라 차량 대기 장소인 예약소를 전국에 설치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온라인을 통해 개인 간 숙박 임대 서비스를 중개하는 에어비앤비 역시 사업 등록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세금 징수 문제가 남아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