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첫 장을 읽었다면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속도감을 내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야기의 제왕’ ‘서스펜스의 제왕’으로 불리는 스티븐 킹(68)의 중편소설집 ‘별도 없는 한밤에’는 그의 작품이 그렇듯 뭐라 설명하기 힘든 서술의 마력으로 독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책은 ‘쇼생크 탈출’이 수록된 ‘사계’(1981), ‘미스터리 환상특급’(1990) 이후 20년 만에 쓴 세 번째 중편소설집(2010)이다.
수록작 네 편 모두 응징과 공모에 관한 것들로 작가 스스로 “독하다”고 할 만큼, 응징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섬뜩하고 강렬하게 담아냈다.
표제작 ‘1922’에서 농부인 ‘나’는 아내가 장인에게 물려받은 땅을 처분하고 도시로 떠나려 하자 살인을 결심한다. 어린 아들을 공모자로 끌어들이니 잔인하기 그지없다. 대대로 물려받은 농촌의 삶을 떠나는 걸 끔찍이 싫어해서다. 아내를 무참해 살해한 뒤 시신을 집 앞 우물에 몰래 묻었고, 사건 현장에 나타난 보안관마저 절묘한 아이디어로 따돌린다. 늙은 젖소를 빠트리고 콘크리트로 우물을 막음으로써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기치 않은 복병이 하나둘씩 튀어나온다.
우선 쥐다. 아내의 시신을 뜯어먹던 쥐는 우물과 연결된 파이프라인에서 나와 가축을 뜯어먹는다. 장면 묘사가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세밀해 더 잔혹하다. 그래서 파이프라인을 막지만 쥐는 끊임없이 환영으로 나타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파멸로 몰고 가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두 번째는 아들이다. 영민한 연기로 완전범죄를 도왔던 14세 밖에 안 되는 아들, 그리고 땅을 물려주고 싶은 희망이었던 아들은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 함께 가출하는데….
마지막으로 돈이다. 아들의 임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빌린 대출은 ‘나’의 발목을 잡는 올가미가 되고, 결국 ‘나’는 대지에서 축출되어 벌을 받듯 도시로 밀려난다. 공장으로, 사서로 전전하지만 끝내 8년 만에 호텔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 음절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채 이런 단말마를 남기고. ‘제발 그만 물어, 제발 이제 그ㅁ.’ 다음날 신문에는 입으로 제 몸을 뜯어먹은 시신이 호텔에서 발견됐다는 엽기적인 사건이 실린다. 나머지 세 작품 가운데 ‘빅 드라이버’는 여성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한 미저리 버전을 보는 듯 하다. ‘공정한 거래’는 말기 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주인공이 생명연장을 위해 악마와의 거래조차 불사하는 욕망이, ‘행복한 결혼생활’은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남편이 사실은 연쇄살인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의 경악이 사건을 끌어가는 힘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엽기적 살인마가 가족이라면… 스티븐 킹, 20년만에 쓴 중편 스릴러
입력 2015-09-11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