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가 대세다. 그러다보니 할머니 의존증은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의 풍속도가 됐다. 2008년 엄마의 가출을 소재로 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인기 대폭발했던 건 가족을 위해 존재감 따위는 잊고 살아야 했던 엄마의 희생에 전 국민이 공감한 때문일 게다. 이제 그 가출의 주체는 할머니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시대다. 희생의 대명사 엄마조차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기대어 사는 집들이 많으니 말이다.
동화집에 수록된 ‘할머니 가출작전’은 그런 변화된 사회상을 건드리고 있다. ‘엄마는 뿔났다’와 다른 게 있다면 손녀가 할머니 편이 되어 가출을 돕는다는 설정이다. 손녀의 대학 첫 등록금은 꼭 대주고 싶어 마련해뒀던 통장을 장롱 깊숙이 서 꺼내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가겠다는 이 신식 할머니의 발상과 용기에 박수칠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하지만 호기롭던 할머니는 비행기 티켓 하나 스스로 끊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사회적 약자로서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슬픈 에피소드다.
이럴 때 손녀가 원군으로 나선다. 숙소를 예약해주고 일정까지 짜준다. 그리하여 손녀와 작당한 할머니의 가출이 감행되는데….
예정했던 일정을 넘기고 제때 집에 돌아오지 않는 예상치 못한 결말은 제주에서 할머니 혼자 가진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를 웅변하는 듯하다.
또 다른 작품 ‘다섯 개의 교훈’은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꼰대스럽고, 때로는 솔직한 가훈의 속뜻을 통해 웃음과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키움바는 알고 있다’는 최신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할까, 그 돈으로 아프리카 소녀 키움바를 도와줄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는 아이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간다. 제8회 웅진주니어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어린이 책-할머니 가출작전] 생애 첫 유럽 배낭여행 할머니는 성공했을까
입력 2015-09-11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