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책 없이도 도서관 만든다

입력 2015-09-11 02:25
일본 동네도서관 운동의 시발점이 된 오사카의 ‘IS 도서관’. 2008년 11평 넓이의 사무실 공간 하나를 도서관으로 꾸몄다. 장서는 설립자가 소장하던 1500권으로 시작했는데 이후 도서관 회원들로부터 기증받은 도서가 4000권이 넘는다. 현재는 자원봉사자와 아르바이트가 교대로 도서관을 운영한다. 펄북스 제공
이소이 요시미쓰는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퇴직한 중년 남성이다. 2008년 고향인 오사카에 있는 자기 소유의 빈 사무실을 도서관으로 꾸몄다. 11평 규모 공간에서 장서는 본인 소장의 1500권으로 시작했다. ‘이소이(Isoi)’라는 자기 이름을 따 ‘IS 도서관’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7년. 이소이 식 동네도서관은 일본 전역에서 120여개로 늘어났다. 죽은 아내를 위해 집을 통째로 도서관으로 만든 노인도 있고, 오랜 시간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를 위해 병원 일부를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 의사도 있다. 폐쇄된 지역 도서관을 동네도서관으로 되살려낸 자매도 있고, ‘장서 0권’에서 출발한 도서관도 있다.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소이가 쓴 책으로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네도서관 운동’을 소개한다. 이소이는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을 꿈꾸다가 동네도서관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동네도서관에서 책은 매개가 될 뿐, 보다 강조되는 것은 사람이다. 소장된 책으로 사람을 끌어 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책을 들고 모여 도서관을 이루는 방식이다. 또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이 만나고 얘기하는 공간이며 취향이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생성되는 곳이다.

동네도서관을 만들 때 공간이나 장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카페든 자기 공간의 일부를 도서관으로 꾸미고 개방하면 된다. 개관도 매일 할 필요는 없다. 주인이 편의에 맞게 문을 열면 된다. 자매가 운영하는 그림책 중심 동네도서관인 ‘모모코 문고’는 매주 화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에만 개관한다.

장서 역시 자기가 가진 책에서 출발하면 된다. 동네도서관의 장서는 이용자들이 자기 책을 가져와 채우는 방식이다. 책을 들고 도서관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참석해 그 책을 소개한 뒤 책장에 꽂아두고 간다. 저자는 “자신이 가져온 책을 소개한 뒤 다른 사람이 그 책을 빌려가 읽고 감상을 말할 때의 기쁨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말한다. 오사카 부립대학 캠퍼스 안에 만들어진 동네도서관의 경우, 1년 반 만에 1000명이 넘는 회원과 7000여권의 책을 모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동네도서관의 장점이다. 이것은 도서관의 혁신이나 재정의라고 할 만한 것이다. 저자는 동네도서관이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강조한다.

이와테 현의 노부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도서관도 사라지고 서점도 학교도 없어진 상황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상처를 치유하도록 하기 위해 ‘숲 도서관’을 지었다. 시네마 현의 ‘소다 도쿠이치로 문고 갤러리’는 할아버지가 남긴 책들로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하던 부인의 유지를 받들어 남편이 조성한 동네도서관으로 주민들과 함께 지켜가고 있다.

개인이 시작하는 혁신적 개념의 도서관, 책을 매개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곳, 공동체의 꿈을 부활시키는 공간, 시민 참여와 협조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장, 동네도서관은 그런 곳이다. 200페이지 분량의 이 얇은 책이 국내에서도 동네도서관 논의를 촉발할 것인지 주목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