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국정감사, 민간기업 감사로 변질 왜…] 기업인 ‘묻지마 증인신청’… 은밀한 뒷거래용?

입력 2015-09-10 02:38
행정자치부 직원들이 9일 정부서울청사 행자부 대회의실에서 정기국회 국정감사 막바지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A금융사 임직원들은 지난달 중순 B의원실 보좌관들과 여의도에서 저녁 식사를 가졌다. 이어진 술자리는 자정을 넘어 보좌관들이 룸살롱에서 어울렸던 여종업원들과 이른바 ‘2차’를 나가면서 마무리됐다. 노사 문제가 불거진 A사 임원들은 최근 사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무마하기 위해 인맥을 총동원해 뛰었다. A사 대관(對官) 담당 직원은 9일 “이렇게 직접 뛰는 게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며 “일부 로펌은 오너 등의 국감 증인 채택을 막거나 참고인으로 낮추는 로비 비용으로 수억원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 국정감사를 앞두고도 여의도에선 국감 증인 채택을 둘러싼 의원실과 기업 간 ‘음습한’ 뒷거래가 횡행했다. 지도부는 “국감은 행정부나 국정 전반에 대해 따지는 것이지 민간기업이 주가 되는 게 아니다”(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고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개별 의원들의 ‘묻지마’ 식 증인 채택 행태로 이번 국감도 ‘기업감사’ 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국감 증인 채택이 확정된 재벌 총수는 조현준 효성 사장(정무위)이 유일하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 회장의 증인 채택이 확실시되는 데다 야당이 이번 국감을 ‘재벌개혁 국감’으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어 국감이 시작되는 10일 이후에도 줄줄이 기업인 증인 채택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감 증인 중 기업인 채택 비중은 갈수록 늘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국감 피감기관과 일반증인 규모는 2011년 556개 212명에서 2014년 672개 315명으로 늘었다. 일반증인 가운데 기업인 비중은 36.8%(78명)에서 41.6%(131명)로 증가했다. 특히 최근 들어 법적 구속력을 갖는 증인을 참고인 신분으로 바꾸려는 기업들의 로비가 집중되면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기업인은 2013년 20명에서 2014년 37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국감이 기업감사로 변질된 가장 큰 이유는 의원들이 증인 채택을 민원 해결의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재벌 오너나 기업 사장의 증인 신청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과 모종의 거래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의원들은 일단 오너나 대표를 불러야 기업이 즉각 반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의원들이 국감 때 증인 신청을 추진하면서 지역구 민원 해결이나 후원금 등을 기업에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재벌들의 잇단 사건사고로 재벌개혁 여론이 거세지자 ‘재벌 때리기’로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의원들의 심리까지 결합돼 기업인 증인 신청이 봇물을 이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원들 사이에선 “어느 의원이 누구를 왜 증인으로 신청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증인신청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증인신청실명제는 정책위에서 개정안을 검토 중이며 증인채택소위를 별도로 구성해 회의 내용을 속기록으로 남긴 다음 증인 채택 완료 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는 일반증인을 신청한 의원과 신청 이유를 기록해 보관하고 있지만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의원들의 국감 증인 신청 권한이 위축되고, 자칫 공개된 의원을 상대로 기업의 로비가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