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난민 엑소더스] 내전 ‘죽음의 땅’ 탈출… 시리아인만 1160만명 떠돌아

입력 2015-09-10 02:23
8일(현지시간) 세르비아와 국경 지역인 헝가리에서 발이 묶인 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리아 등지에서 온 난민들은 며칠 동안 이곳 들판에서 생활하면서 자신들을 가까운 난민캠프로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UPI연합뉴스
난민 위기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쏟아지는 난민에 대해 유럽연합(EU) 일부 회원국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난민 위기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와 실업률 증가를 겪고 있는 나라들은 “난민까지 돌볼 여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9일(현지시간) 유럽의회 국정연설에서 난민 16만명을 회원국에 분산하는 강제 할당안을 발표했다. 독일이 3만1000명, 프랑스가 2만4000명, 스페인이 1만5000명 가량을 추가로 수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사상 초유의 난민 사태 원인은

난민은 시리아를 비롯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터키,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나이지리아 등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 9개국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각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치안이 불안정해진 틈을 타고 ‘이슬람국가(IS)’ 등 급진주의 무장단체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위험을 무릅쓰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에 따르면 2015년 9월 현재까지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 수만 따져도 38만1400명이 넘는다. 그중 2800여명이 유럽으로 가는 길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출신 국가 비중을 살펴보면 시리아가 53%로 가장 높고 아프가니스탄이 14%, 에리트레아가 7%, 나이지리아와 이라크가 각각 3%, 소말리아와 수단이 각각 2%가량을 차지한다. 현재 시리아에서 매일 수천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IS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는 이라크에서 추가로 3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UNHCR은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이 내년까지 85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난민위기의 진앙지, 시리아는 왜 죽음의 땅이 됐나

시리아는 지난 2011년 이후 5년째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시리아의 위기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중동을 뒤덮은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시리아 남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되면서 반정부 시위가 거세졌다.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기갑사단까지 투입해 과잉진압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국에서 수십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반정부 진영은 자유시리아군(FSA) 등 무기를 갖춘 무장세력으로 변했고, 정부군이 이에 맞서면서 내전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전으로 민간인에 대한 살인, 고문, 성폭행 등 전쟁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군이 민간인 거주지역에까지 드럼통에 폭약과 쇠붙이 등을 넣은 일명 ‘통폭탄’을 무차별 투하하면서 시리아는 아무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변했다. 여기에 IS가 시리아 동북부를 장악하면서 주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는 최악의 난민 상황을 불러왔다. UNHCR은 현재 고향에서 더는 살 수 없게 된 시리아인이 116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내전 직전 시리아 전체 인구인 2300만명의 절반을 넘는다

난민 쏟아지는 유럽, 일부 국가들 난민 꺼리는 이유는

전쟁과 죽음을 피해 고향을 떠난 난민들은 바다를 통해 남유럽의 그리스나 이탈리아로, 육로를 통해 터키와 동유럽으로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경제가 안정적이고 복지 수준이 높은 ‘희망의 땅’ 유럽으로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UNHCR은 올해 1분기의 경우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에 도착한 25만여명 중 90%가량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출신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가까스로 유럽에 닿아도 EU 회원국에서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쉽지 않다.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권은 독일 주도의 ‘난민 강제 할당제(쿼터제)’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한다. 서유럽 국가들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탓도 있지만 최근 동유럽 국가들은 종교적인 문제를 내세워 부담감을 드러냈다. 슬로바키아는 “기독교인 난민만 수용하겠다”고 밝혔고 헝가리 역시 “무슬림 난민이 몰려와 유럽의 번영과 정체성, 기독교적 가치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거부감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리아에서만 국경을 넘은 난민이 400만명을 넘은 상황에서 EU 국가의 모든 난민 수용 인원을 다 합친다 하더라도 전체 난민의 1%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쿠르디 죽음 이후 조금은 달라진 세계

지중해에서 올해 2800명이 넘는 난민들이 숨을 거둘 때까지 난민 문제를 유럽의 일로 치부해왔던 지구촌이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제 할당마저 거부하고 나선 유럽 일부 국가들과 대조적으로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먼 이웃’들이 난민 수용 계획을 잇달아 밝히고 있다.

캐나다 퀘벡주는 난민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올해 시리아 난민 수용 규모를 당초 목표였던 1200명에서 세 배 수준인 365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초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에일란 쿠르디(3)가 당초 친척이 있는 캐나다로 망명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캐나다 안에서도 충격이 컸다.

뉴질랜드는 앞으로 2년여에 걸쳐 시리아 난민 750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연간 난민 예산과 별도로 4880만 뉴질랜드달러(약 370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이고 인도적 구호기금도 증액할 계획이다. 호주도 난민 1만2000명을 추가 수용할 예정이다.

중남미권 국가들도 앞으로 난민을 더 많이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미 2000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들이 정착해 있는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면서 “난민 문제는 전 세계의 과제”라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도 시리아 난민 2만명을 수용할 계획을 밝혔고, 칠레 정부도 50∼100가구의 시리아 난민을 칠레에 정착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브로커 퇴치, 분산 수용, 정착 지원 절실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냐

EU는 난민 참사의 주된 원인인 난민 밀입국 브로커를 퇴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 공동 경찰기구인 ‘유로폴(Europol)’과 EU 해군 등은 지상과 해상에서 브로커를 단속하는 공동 작전을 벌이고 있다. 계속되는 반대 속에서 난민 수용 부담을 나누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발생한 난민에 대한 대책일 뿐 난민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해결책은 난민 발생국의 내전 종식과 IS 격퇴로 귀결된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알아사드 정권과 반군 세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방법은 어려운 만큼 영토 분할이나 연방제 등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