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거듭 지적하건대 국정교과서는 시대착오적이다

입력 2015-09-10 00:49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교육부는 9일 “현재까지 중등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국정화로 결론이 난 듯하다. 청와대와 교육부가 내부적으로 국정화를 확정하고 예상되는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표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정화 강행은 여러 군데서 감지되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실에서 역사는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거듭 천명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9일 “국정 교과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내가 계속 해오던 이야기”라고 했다. 최근 열린 ‘2015년 개정 교육과정 공청회’에서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시안이 발표됐다. 당정이 이미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국정화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에 따라 역사학계와 일선 교사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들과 전국 초·중·고교 역사 교사들이 반대 선언문을 발표한데 이어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1167명도 이날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 중·고교 사회과 교원 2만419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8%가 국정화에 반대했다. 현장의 우려와 반대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런 움직임에도 정부는 검인정 교과서의 사실관계 오류 및 편향성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권 차원에서 국정화를 강행하다보니 한국사 체제 논의 과정은 졸속 그 자체였다. 국정화 논란이 불거진 이후 1년6개월 동안 역사 교과서 발행에 대한 토론회나 공론화 자리는 전무했다. 2015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수차례 진행하면서도 국정화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그 흔한 정책 연구나 설문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차대한 한국사 체제 수정을 은밀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수년에 걸쳐 공개적으로 추진해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다.

국정체제는 유신 시절에나 있었던 낡은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과서 국정체제를 채택한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국정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는 북한, 베트남, 몽골 정도다. 누누이 지적하지만 국정 전환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 헌법에도 어긋난다.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보장하는 세계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국정체제로 돌아갈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다시 편찬하는 사태도 빚어질 수 있다. 정권의 역사관에 따라 교과서가 휘둘리게 되면 교육 현장은 물론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교육을 왜 백년지대계라고 하는지 되새겨보길 바란다. 정부는 국정화 전환 시도를 중지해야 한다.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