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윤선화] 국민의 안전불감증을 탓하지 마라

입력 2015-09-10 00:04

대형 사고가 나면 우왕좌왕하며 성급하게 원인을 찾다가 그게 쉽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불감증 탓으로 돌려버리고 말았던 것이 지금까지 정부의 관행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그리고 섣부른 진단은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개발 또는 현장에서의 정책효과에 대한 면밀한 평가 노력보다 이벤트성 안전궐기대회나 탁상행정을 양산하는 원인이 됐다. 이른바 안전 선진 국가들을 들여다보면 안전사회를 지지하는 탄탄하고 엄중한 현장 안전규제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의 무능과 컨트롤타워 부재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와 함께 비정상적인 안전관리의 정상화를 위해 국민안전처를 출범시켰다. 국민안전처는 올해 업무보고를 통해 전국 어디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육상에서는 30분, 해상에서는 1시간 이내에 특수구조대가 현장에 도착,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5일 낚싯배 돌고래호 전복 사고가 발생해 8명의 생사를 아직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당시의 민낯을 다시 보여준 셈이다.

이번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고 있다. 낚싯배 승선인원 관리 문제와 구명조끼 착용 감독 소홀 논란이 불거지고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을 심각한 문제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수긍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유사한 사고를 겪고도 여전히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정부의 불감증이 더 문제 아닐까. 정부는 온갖 제도를 만들고 발표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현장에서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실효성이 있는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생계형으로 낚싯배를 운항하는 입장에서는 위험을 무릅쓰려 할 것이며, 낚시꾼들은 법적 의무사항도 아닌 구명조끼를 굳이 착용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현장의 이런 상황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위험 감시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해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생계형 이윤추구라는 당면과제 앞에 안전제일이라는 가치가 현장에서 작동되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독려해야 하며, 잘 작동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낚싯배를 출발시키지 않는다. 이렇듯 구명조끼 미착용자가 있을 경우 배를 운항하는 책임자에게 벌금을 물리거나 운항에 페널티를 주고, 구명조끼 미착용자를 내리게 하는 권한을 선장에게 주는 등의 제도 개선으로 국민의 ‘귀차니즘’이나 안전불감증을 통제하는 제도와 점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제 안전불감증이란 말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앞으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불신 속에서 국민 스스로 안전과잉 대응을 하는 상황이 재현돼선 안 된다. 배 사고가 났다고 모든 국민이 배의 전문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안전불감증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니다.

국민도 더 이상 개개인의 잘못으로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현장은 별로 바뀌지 않는데 정부는 조직을 키우고 거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구시대적인 행태를 고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조직은 전문성 부족 또는 순환보직으로 인해 경험 축적이 안 되는 상태인데도 현장 안전진단이나 안전교육 등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오히려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민간 전문 역량의 활성화를 막기도 한다.

정부와 민간, 국민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몰입해 시행하는 나라가 안전 선진국이다.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선전하거나 해야 할 일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 이것이 안전불감증에 빠진 국민 탓인 양 몰아붙여서는 결코 불안한 나라, 재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윤선화 한국생활안전연합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