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보이(little boy)’, 사흘 뒤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 떨어졌다. 리틀보이와 팻맨은 미군이 2차 세계대전 중 ‘맨해튼 프로젝트’에 따라 개발한 원자폭탄이다. 우라늄235를 원료로 만든 리틀보이는 길이 3m 지름 71㎝ 무게 4.36t에 TNT 1만3000t과 맞먹는 위력을, 플루토늄239를 사용한 팻맨은 길이 3.25m 지름 1.52m 무게 4.9t로 TNT 2만2000t의 파괴력을 지녔다.
순간 죽음의 도시로 변한 두 도시에서 총 70여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10%인 7만여명이 한국인이다. 4만여명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생존자 3만여명 중 2만3000여명은 광복 후 귀국했다. 한국인 피해자 중 경남 합천 출신이 60%를 넘는다. 당시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와 두 도시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에 유독 이곳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 민간단체가 합천에 원폭치료센터를 건립·기증하고, 한·일 정부 지원으로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합천에 터를 잡은 배경이다.
피폭의 재앙은 끔찍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 원폭 피해자들이 우울증에 걸린 확률은 일반인의 93배, 백혈병 등 조혈계통 암 70배, 빈혈 52배, 정신분열증 36배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후유증이 2세, 3세로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건강 등의 문제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매월 수십만∼수백만원의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8일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로 2500여명의 한국 거주 원폭 피해자도 일본인 피해자와 똑같이 일본 정부로부터 치료비 전액을 지원받을 길이 열렸다. 지금까진 일부만 지원받았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끈질긴 법정 투쟁과 일본 양심세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국회에는 여러 건의 원폭 피해자 지원 법안이 계류돼 있다. 이전 국회에서도 지원법이 제출됐었으나 번번이 폐기됐다. 일본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부터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한국인 원폭 피해자
입력 2015-09-10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