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0∼26일 이산상봉] ‘상봉 제도화’ 논의 가능성 열어놨다

입력 2015-09-09 02:14
우리 측 수석대표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오른쪽)이 8일 오전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무박 2일’ 동안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에서 합의를 이끌어낸 뒤 북측 수석대표인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과 작별 악수를 나누고 있다. 통일부 제공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에 합의하면서 일단 큰 고비는 넘었다는 평가다. 한·중 관계에 대한 불만 등으로 북한이 어깃장을 놓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실무적 부분에 대한 논의만을 고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봉 정례화 등 근본적 문제의 논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상봉 시기가 기대보다 늦춰진 것은 불안 소지를 남긴다. 북핵 문제를 다룰 외교 이벤트가 많고 북한의 도발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양측 사이의 첨예한 신경전과 줄다리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년8개월 만의 이산가족 상봉 성사=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협상이 이틀에 걸쳐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금강산 면회소 건설을 위한 실무협상이 며칠에 걸쳐 이뤄졌을 뿐이다. 그만큼 이번 협상에선 예상 밖으로 팽팽한 기 싸움이 펼쳐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측은 처음부터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 이전에 행사를 개최하자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예견된 만큼 미리 불안의 여지를 없애자는 전략이었다. 또 시간이 늦어져 겨울이 되면 고령인 이산가족 생존자들이 금강산까지 여행하기가 어려운 점도 감안했다. 하지만 실무적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북측 주장에 막혀 이 요구는 관철되지 못했다.

우리가 조급하게 나선 측면도 있다. 과거 사례를 볼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통상 ‘합의 2개월 뒤’에 열렸다. ‘8·25합의’ 이후 두 달에 약간 못 미치는 10월 20일에 행사가 열리게 된 점을 감안하면 북한도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봉 규모도 확대하긴 어려웠다. 시간이 촉박할 뿐더러 숙소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양쪽이 합의한 이산가족 수는 100명씩이지만 여기에 남측의 동반자와 북측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500여명이나 된다. 단기간에 시설을 확충하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있었다.

다만 행사 시기가 늦어지면서 불안정성도 함께 높아진 게 문제로 꼽힌다. 이달 말에는 미국 뉴욕에서 유엔총회가 예정돼 있다. 북한 이수용 외무상이 참석, 고조되는 대북 압박에 대응해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이어 다음달 16일엔 한·미 정상회담이 이어진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반발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번 기회에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만남을 다른 문제와 분리해 진행하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쉬움 남긴 상봉 제도화=이산가족에 대한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상봉 정례화 문제를 두고는 양측의 온도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에 행사 일정 등 실무적 부분을 양보한 우리 측은 대신 제도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요구했다. 2013년 8월 실무접촉 합의문에서 상봉 정례화, 생사확인, 서신교환 등을 명시했던 만큼 더 진전된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서였다. 모처럼 남북 최고위급이 나선 ‘2+2회담’으로 합의를 만들어낸 만큼 이번 실무접촉이 전향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북한은 ‘권한이 없다’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북한 대표단은 실무 안건 외에는 어떤 것도 논의하기 어렵다는 자세를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대상을 세분화해 ‘각개격파’하는 북한의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었다. 또 북한 측 수석대표인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도 실제 이런 사항을 결정할 만한 지위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거듭되는 우리의 강경한 요구에 북한 대표단도 지휘부에 보고한 뒤 허가를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협상이 막판에 장기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양측은 합의문에 구체적인 안건을 담지 못하고 ‘상호 관심사’ 논의를 위한 남북 적십자 본회담을 여는 것으로 내용을 절충했다. 본회담 개최시기를 두고도 양측은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결국 우리 쪽 요구를 받아들여 합의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개최하는 것으로 명시됐다. 정부 당국자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직후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신중한 스탠스를 유지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제 첫 단추를 채우기 시작한 것이니 앞으로 차근차근 잘 풀어야 한다”며 “이산가족 상봉 일정 합의라는 성과를 바탕으로 분위기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준구 문동성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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