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3월 벌어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묘사한 홍성담 작가의 그림을 철거키로 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8일 “본래 취지와는 다른 측면이 부각되고 오해가 생겨 전시에서 해당 작품을 철회하기로 했다”며 “전시 총감독인 홍경한씨가 작가와 상의한 끝에 작품을 내리기로 했다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미술관이 지난 4일 개막한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에 홍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사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자 논란이 일었고 미술관에도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문제가 된 ‘김기종의 칼질’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황색 옷을 입은 남성이 양복 입은 남성의 넥타이를 당기고 한쪽 손으로 칼을 겨누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작가의 글이 길게 쓰여 있다. “김기종이는 2015년 3월 모월모시에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주한 미국대사 리퍼트에 칼질을 했다. 얼굴과 팔에 칼질을 당한 리퍼트는 붉은 피를 질질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가고 김기종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중단하라’ 고래고래 외치면서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적혀 있다. 이어 “조선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도 역시 우리 민족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라며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에게 형님의 나라인 일본의 훌륭한 정치인을 죽인 깡패도적쯤으로 폄하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넌지시 욕을 했다”고 돼 있다.
홍 총감독은 “총 24명(팀)의 작품 140여점이 출품됐는데 이 중 한 작품으로 다른 작가의 작품마저도 정치적 프레임으로 비치는 현상에 대해 총감독으로서 묵과할 수 없었다”며 “다양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호해야 하기에 논란이 된 작품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자유와 방종은 구분돼야 한다”며 “스스로 자유를 구가하려면 사회적으로 합의돼 있는, 지켜야 할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로 꼽히는 홍씨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을 전시해 논란이 됐었다. 당시 그가 출품한 걸개그림 ‘세월오월’에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것이 문제가 되면서 개막식에서 전시가 유보되는 등 파문이 일었다.
홍 작가는 ‘김기종의 칼질’에 대해 “그 사건을 옹호한 게 아니라 그 사건 자체가 왜 일어나게 됐는지, 우리 삶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를 돌아보고 의논하고 토론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리퍼트 주한 美 대사 피습’ 장면 묘사한 그림, 아트페어 전시 중 파장 일자 철거
입력 2015-09-09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