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명품마을을 가다] (22) 광주광역시 충효동 평촌마을

입력 2015-09-09 02:51
평촌마을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평촌생태탐험대 어린이들이 지난달 김준석 운영위원회 사무장으로부터 ‘평촌마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평촌마을 제공
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원으로 유명한 소쇄원에서 무등산 자락의 맑은 물이 흐르는 증암천을 건너 잠시 걷다 보면 광주시 충효동 평촌마을이 나온다. 전남 담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평촌마을은 담안·우성·동림·닭뫼 등 4곳의 작은 마을로 형성돼 있다. 과거 ‘담안장터’로 불리던 평촌마을은 광주와 담양, 화순 주민들이 5일장을 열고 특산품을 물물교환하던 곳이다. 주로 논밭에서 수확하는 농산물과 특산품인 무등산 수박으로 생계를 꾸리던 평촌마을은 장터가 시들해진 이후 수년 전까지 외지인의 발길이 뜸했다.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소쇄원과 식영정, 가사문학관, 호수생태원이 불과 4∼5분 거리에 있지만 이 마을을 들르는 경우는 가물에 콩 나듯 했다. 그것도 1급수인 마을 앞 증암천에서 간혹 천연기념물 수달이 귀여운 모습을 보일 때나 임금에게 진상된 무등산 수박이 생산되는 시기에 그칠 뿐이었다. 관광객을 끌어들일 마을 자체의 기반시설과 주변 관광명소를 활용할 만한 인적·물적 토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1월 무등산국립공원 승격 과정에서 마을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국립공원에 자발적으로 편입되자 사정이 확 달라졌다. 벽에 못 하나 박기도 힘들 만큼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국립공원 브랜드를 활용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21세기형 마을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무등산을 한 바퀴 도는 ‘무돌길’ 인근 마을 중 유일하게 국립공원 구역으로 포함된 이 마을은 반딧불이 꿈꾸는 ‘평촌 무등산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지정돼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농촌의 속살을 엿보려는 무돌길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립공원 내 명품마을 제도는 규제 위주의 정책을 탈피해 아름다운 자연생태와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특정 마을과 국립공원이 동반성장을 꾀하려는 시도다.

2010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관매도를 시작으로 2015년 한려해상국립공원 만지도까지 모두 14개 마을이 명품마을로 지정됐다. 내륙에선 드물게 명품마을로 선정된 평촌마을에는 지난 8월에만 전남대 경영학부 동아리팀, 기독교 대안학교, 스토리텔러 작가팀, 인터넷 젊은아빠 동아리, 석곡동 한약초 작목반, 순창 함께하는 마을팀, 광주교대부속초교 학생 등이 단체 방문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이 광주지역 경로당 노인 40여명을 모시고 마을투어를 온 지난 8일에도 주민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을 한동안 바쁘게 만드는 마을투어는 빈번하게 진행되지만 평촌마을은 평온한 분위기다.

1㎞ 남짓한 거리에 늘어선 솟대들을 따라 평촌마을에 들어서 ‘무돌길 쉼터’에 앉으면 ‘평모뜰’과 마을 뒷산인 금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넓은 평모뜰과 금산에서는 친환경 우렁이쌀과 고사리, 취나물, 식방풍 등 산나물이 자라고 있다. 수확한 쌀 등 농산물과 제철 산나물은 공판장 기능을 하는 무돌길 쉼터에서 그때그때 판매된다.

무돌길 쉼터에서 파는 5000∼2만5000원에 해당되는 품목은 콩과 참기름 들기름 토란대 호박 고구마 등 20여종에 달한다.

마을 공동창고를 개조한 무돌길 쉼터에서는 평촌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콩 등 신선한 농산물을 재료로 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무등산 수박 빙수와 홍초 라떼, 고구마로 만든 콩콩 라떼 등 마실거리는 독특하다.

1남3녀를 둔 평촌마을 부녀회장 공은주(52)씨는 “그동안 4개 마을 주부들이 꼬박꼬박 반상회를 열어 자연과 전통을 간직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왔다”며 “평촌마을과 무돌길 쉼터는 많은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켜켜이 숨겨진 보물창고”라고 말했다. 마을 전체가 웨딩포토 장소로도 손색이 없는 평촌마을 곳곳에서는 농촌체험도 가능하다. 두부과자·고구마 빼빼로·솟대피리 만들기, 두부들기름 지짐, 소여물주기, 도예공방 등을 할 수 있다. 이 중 평촌도예공방 체험은 빼놓을 수 없다. 투박한 무등산 분청사기의 맥을 잇는 도예공방에서는 원하는 모양의 그릇과 화병, 접시 등을 직접 만든 뒤 가마에 구워 집으로 가져가거나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평촌마을 자체 숙박시설인 ‘반디마을’에 하룻밤 묵을 때는 청정 환경에서 서식하는 반딧불이도 관찰할 수 있다.

평촌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상징인 반딧불이를 지키기 위해 먹이가 되는 다슬기를 정기적으로 증암천에 번식하고 있다. 인위적 개발에 치중하기보다 팍팍한 도시 삶에 지친 이들의 ‘힐링 명소’가 되려는 것이다. 주민들은 특히 스스로 마을의 역사를 발굴해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관광가이드나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평촌마을은 2014년 11월 광주 상무지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시 ‘우리 마을 자랑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지난 6월 경기도 시흥에서 개최된 ‘2015세계평생학습포럼’에서 대한민국 대표 평생학습 우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평촌마을 운영위원회 사무장 김준석(55)씨는 “지난해에만 전국 각지에서 1만5000여명이 마을을 다녀갔으나 공동판매장 등 매출은 아직 1억여원의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현재 55가구 130여명의 마을주민들이 똘똘 뭉쳐 만드는 생태탐방로가 내년까지 완성되면 방문객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