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당한 수당 받기 위한 ‘야근시계’ 왜 멈췄나

입력 2015-09-08 02:10

‘지각과 결근은 꼼꼼히 기록되는데 왜 퇴근시간은 별다른 기록이 남지 않는 걸까.’ 날마다 야근에 시달리면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던 근로자들이 2012년 퇴근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이름은 ‘야근시계’라고 붙였다.

스마트폰에 이 앱을 설치하고 퇴근 때 화면을 몇 번만 두드리면 퇴근하는 시간과 위치가 정해진 이메일로 전송된다. 그 시간까지 일했다는 게 입증되도록 일하는 모습을 촬영해 함께 보관할 수도 있다.

야근시계 앱에는 기구한 사연이 숨어 있다. 한 은행의 IT 계열사에서 일하던 양모(40)씨는 2009년 결핵성 폐농양에 걸려 한쪽 폐를 잘라냈다. 젊고 건강했던 양씨는 그 회사에서 2년3개월간 8700시간을 근무한 터였다. 주당 70시간 이상 일한 셈이다.

휴직 끝에 회사를 떠나게 된 양씨는 2010년 회사를 상대로 휴일·야근수당 청구소송을 냈다. 그런데 회사 인사자료에는 출근 여부만 있고 퇴근시간이 기록돼 있지 않았다. 재판에서 장시간 근무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과 손잡고 직접 ‘야근시계’ 개발에 나섰다.

야근시계는 작은 성공을 거뒀다. 한 대형마트 노조는 매일 한두 시간 연장근무를 하면서도 수당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 못마땅했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연장근무수당을 받으려면 신청서를 미리 제출해야 했는데 회사 분위기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에 노조원 2명이 야근시계에 근무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 기록을 근거로 법원에 연장근무수당 소송을 내서 지난해 1월 5개월치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야근시계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7일 현재 앱 다운로드는 5000건에 불과하고 실사용자 숫자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업데이트도 인력난과 자금난이 겹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야근시계 개발자조차 이 앱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왜 야근시계는 활성화되지 못한 걸까.

나경훈 IT노조 사무국장은 “근로자 사이에 초과근무시간을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체념적 정서가 있다”고 했다. 그 배경엔 초과근무수당을 미리 정해진 금액대로 지급하거나 출퇴근하면서 근로자처럼 일해도 사업자 신분으로 계약하는 IT업계의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전모(28)씨는 2013년부터 경기도 성남의 영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부지기수로 밤을 새웠고 주말도 반납해가며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150만원 남짓이다. 그는 “나는 을도 아니고 병도, 정도 아닌 무”라고 하소연했다. 대기업, 협력사, 하청업체로 하청과 재하청을 거치면서 전씨 몫의 인건비는 반토막이 났다. 전씨는 “호기심에 야근시계를 몇 번 사용하다 이내 그만뒀다. 임금체불을 당하는 동료도 있는데 초과근무수당은 언감생심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컴퓨터 만지는 일밖에 없어서 재계약을 하려면 조용히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흘린 땀만큼의 몫을 찾겠다며 야근시계가 등장한 지 3년이 흘렀다. IT산업 근로자의 노동 환경은 제자리에 멈춰선 지 오래다. 2013년 IT노조가 실시한 IT 노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IT산업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61시간30분. 2004년 조사에 비해 고작 30분 줄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