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낚싯배 전복사고는 잠재된 여러 위험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재난이 발생한다는 ‘스위스 치즈 모델’을 재차 입증하는 사례가 됐다. 불과 이틀 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포럼에서 제기됐던 재난의 원인들이 그대로 재현됐다. 엉터리 승선명부, 미탑승자의 거짓보고, 구명조끼 미착용 등 축적된 위험요소가 악천후 속 운항이란 직접 원인을 만나 참사로 이어졌다.
서울시립대 김호기 교수는 지난 3일 서울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6회 형사사법포럼’에서 스위스 치즈 모델로 재난의 발생 원인을 설명했다. 영국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이 고안한 이 모델은 박테리아가 배출하는 기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스위스 치즈처럼 방벽마다 뚫려 있는 오류들이 중첩돼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모든 시스템에는 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위험관리 ‘방벽’이 겹겹이 존재한다. 하나의 방벽이 기능하지 않는다고 시스템 전체가 위협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방벽의 실패와 오류를 묵인·간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위험요인이 축적되다 어떤 직접적 사고 원인이 발생하면 연쇄 작용되면서 재난을 낳는다.
지난 5일 발생한 돌고래호 전복사고는 이런 재난 발생 과정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승선명부에는 22명이 기재돼 있었지만 4명은 실제 탑승자가 아니었고, 명부에 없는 3명이 타고 있었다. 대충 정원에 맞춰 명부를 작성한 뒤 중간에 다른 낚시꾼들을 태워 다니는 소형 낚싯배의 관행이었다. 명부에는 있지만 실제 승선하지 않은 박모(43)씨는 추자해경안전센터의 연락을 받고 “배가 잘 가고 있다”고 했다. 허위 명부가 드러나면 친분이 있던 돌고래호 선장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순간적으로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탑승객들은 비에 젖어 축축하다는 이유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낚시어선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 법안은 4개월째 국회에서 방치되고 있다. 추자안전센터는 신고 접수 후 23분이 지나서야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상황센터에 보고했다. 신속한 출동과 구조에 실패했다. 모두 직접 원인은 아니었지만 사고가 재난으로 이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이윤을 위한 과적, 불법 증개축, 고박 부실 등이 항해사의 운항 미숙이란 직접 원인과 결부되면서 참사로 이어졌던 세월호 사건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고 이후 정부 당국은 선장 등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데 급급했다. 김 교수는 “재난사고는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시스템의 위험관리 실패로 인해 발생한다”며 “다층적 방어가 충실히 이뤄지도록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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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08 0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