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2015 태권도의 날 유감

입력 2015-09-08 00:30

지난 4일 서울 리츠칼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5 태권도의 날’ 기념식은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4년 9월 4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2008년부터 매년 열린 기념식은 태권도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기도 하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특히 세계태권도 본부인 국기원 창설자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의 즉석 축사가 눈길을 끌었다. 태권도의 날은 한국인들만의 잔치가 아닌 세계인의 잔치가 돼야 한다는 것과 태권도가 이제는 보급 차원을 넘어 마약퇴치, 환경보호 같은 사회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태권도 원로의 새로운 비전 제시여서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수년째 이 행사를 지켜본 기자의 눈에는 여전히 태권도는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존재하며 태권도의 주인은 태권도인이 아니라 정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날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김종덕 장관의 기념사에 이어 태권도 관련 4개 단체장들인 국기원 이사장,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의 축사로 모두 채워졌다. 국기원 이사장과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은 정치인이 맡고 있어 순수 태권도인은 진흥재단 이사장 정도였다.

국기원장은 메인테이블 좌석만 지켰을 뿐 어떤 축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국기원 이사장은 행정적으로 국기원장을 선임하는 이사회의 장일 뿐 단증을 발급하고 국기 태권도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은 국기원장이다. 김 전 총재 이후 국기원장은 당연히 태권도인들이 맡아 왔다. 이 같은 태권도인 푸대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태권도원 정식 개원식을 겸해 열린 태권도의 날 행사에서도 태권도인들은 완전 배제된 채 국무총리와 몇몇 정치인들의 축사로만 진행돼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축하하러 페루에서 온 이반 디보스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 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내빈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지적할 것은 태권도의 날 행사가 여전히 국내 행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태권도는 전 세계 206개국에 보급되고, 수련생 8000만명을 보유한 세계적인 무도다. 김 전 총재의 지적처럼 세계인들의 잔치가 되기 위해서는 행사의 콘셉트부터 바꿔야 한다. 지난달부터 전북 무주의 태권도원에서 전지훈련 중인 수단 국가대표 선수들은 태권도의 날에 무슨 흥미로운 행사가 있는지 들뜬 기분으로 이것저것 캐물었다고 한다. 이들 외국인 수련생들로부터 기념행사의 새로운 모티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기념식을 왜 태권도원에서 치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태권도원은 전 세계 태권도인들의 성지로, 국가예산 2400억원을 들여 전북 무주에 조성된 세계 최고의 태권도 전용 시설이다. 태권도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 태권도원에서 태권도의 날 기념행사를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참석자들의 편의를 생각해 서울에서 기념행사를 계속 갖는다면 애초부터 부지 선정을 잘못한 것이 된다. 이런 저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무주에 태권도 성지를 건립할 가치가 있었다면 전국의 태권도인들이 서울보다 오히려 모이기 쉬운 태권도원에서 기념식을 가져야 한다. 세종시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도 무주가 서울보다 가깝다. 태권도원과 국기원의 관계 설정 문제도 조만간 용단을 내려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국기원과 태권도원은 통합해 태권도원에 자리잡아야 한다. 이에 앞서 태권도원 활성화를 위해 국기원의 연수 업무를 전부 태권도원에서 진행하고 인근 시·도의 품·단증 심사도 태권도원에서 시행하면 어떨까.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