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농화원(石農畵苑)’이란 화첩이 있다.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자들 사이에 ‘전설의 화첩’으로 통한다. 조선 후기 최고의 그림 수집가였던 석농 김광국(1727∼1797)이 꾸민 화첩으로 부록 1권을 포함해 10권으로 구성돼 있다. 정선 18점, 심사정 14점, 이정 6점, 윤두서 5점, 김홍도 3점 등 우리나라 화가 101명의 그림을 포함해 총 267폭이 수록됐다.
김광국은 50대 이후를 이 화첩을 만드는 데 바쳤다. 58세에 ‘본첩’이라고 불리는 4권을 완성했고, 마지막 권인 ‘부록’을 꾸민 것은 70세였다. 그리고 71세에 사망했다. 화첩에 실린 각 그림에는 김광국이 교류했던 당대의 문사와 명사들이 짓고 최고의 서예가들이 쓴 ‘화제’(畵題·그림을 대상으로 쓴 시문)와 ‘화평’(畵評·그림평)이 붙어 있다.
‘석농화원’은 김광국 사후 사라졌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석농화원’에 실렸다는 일부 그림이 여기저기서 발견됐을 뿐이다. 그래서 2013년 말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린 고서경매에 ‘석농화원’이란 제목의 책이 출품됐을 때 미술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 책이 화첩의 전모를 상세히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첩에 실려 있던 작품 목록과 화가 이름은 물론 작품에 붙은 화제와 화평 전문, 이를 짓고 쓴 이들의 이름까지 상세히 적어놓았다.
이 책은 초고 상태의 책, 즉 육필본이다. 곳곳에 먹으로 지운 흔적도 있고, 붉은 글씨로 교정 본 흔적도 남아있다. 편집자가 김광국으로 적혀 있어 그가 살아생전에 꾸며진 것이 분명한데, 필사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김채식 성균관대 연구원과 함께 육필본 ‘석농화원’을 번역해 ‘김광국의 석농화원’(눌와·사진)을 출간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화제와 화평은 조선시대 최고 수준의 화론과 회화비평을 보여준다. 또 화첩 ‘석농화원’에 실려 있던 것으로 알려진 그림 중 지금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찾아와 원래 화첩의 체제에 따라 실어 화첩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석농화원’의 회화사적 의의와 김광국의 생애를 정리한 유 교수의 해제도 충실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전설의 화첩’ 석농화원, 번역본으로 출간
입력 2015-09-08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