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단시간 내에 이처럼 처지가 뒤바뀐 조미료가 있을까? 불과 수세기 전만 해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귀한 감미료였으나 지금은 건강과 다이어트의 적으로 인식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인기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설탕 찬양’이 웃음과 우려를 동시에 낳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백종원만큼이나 설탕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설탕으로 맛이 아닌 예술을 빚는 슈가크래프터다.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설탕은 습기와 직사광선만 주의하면 영구적으로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다. 하얀색 설탕반죽에 식용색소가 더해지고, 슈가크래프터의 섬세한 손놀림을 거치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공예품이 탄생한다.
슈가크래프트는 영국에서 웨딩케이크 장식용으로 시작됐다. 단순히 먹는 케이크에서 벗어나 시각적으로도 즐길 수 있는 케이크가 등장한 것이다. 초창기에는 설탕이 귀했기 때문에 왕족과 귀족의 과시용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설탕이 대량 생산되면서 대중화되었다.
슈가크래프터 김영수(36·쿠키앳홈 대표)씨는 “슈가크래프트가 대중화되어 있다고 해도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반 케이크보다는 비싼 게 사실”이라며 “따라서 매년 맞는 생일보다는 백일이나 돌, 프러포즈 등 특별한 날에 제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슈가크래프트 주문자들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장식을 원한다. 장미, 튤립 같은 꽃 모양은 물론 애니메이션 캐릭터, 선물 받는 사람의 모습, 직업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주문하기도 한다. 또한 한번 먹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관하고 장식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슈가크래프트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영국이나 일본 등에서 관련 기술을 배워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슈가크래프터들의 실력이 높아져 영국의 ‘케이크 인터내셔널(cake international)’ 등 권위 있는 국제대회에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슈가크래프트는 자격증이 필요하진 않고 사설 교육기관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초보 과정은 1개월, 전문가 과정은 5∼6개월 걸린다. 슈가크래프터를 준비 중인 김은진(31)씨는 “남들에게 설탕은 그저 단맛을 내는 감미료이지만 저에게는 마법의 가루”라며 “마법의 가루가 뿌려진 곳에는 꽃이 피고, 동물도 태어나며 제 꿈도 함께 영글어간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진·글=김지훈 기자 dak@kmib.co.kr
[앵글속 세상] 설탕은 달다? 설탕은 예술! … 설탕의 마술사 ‘슈가크래프터의 일상’
입력 2015-09-08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