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 전복 사고] 파도·칼바람과 11시간 사투… “희망으로 버텼다”

입력 2015-09-07 03:15 수정 2015-09-07 18:37
5일 저녁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낚시어선 돌고래호에 탑승했다가 구조된 생존자들이 6일 오전 제주시 한라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돌고래호는 5일 오후 7시25분쯤 제주 추자도 신양항을 떠나 전남 해남 남성항으로 향했다. 배에는 선장 김모(46)씨와 낚시꾼 등 21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이날 새벽 2시쯤 해남에서 배를 타고 추자도로 와 낚시를 즐긴 뒤 돌아가는 길이었다.

비슷한 시각 추자항에서 남성항으로 출항한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씨는 해상 기상이 좋지 않자 회항하면서 오후 7시44분쯤 돌고래호 선장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잠시만”이라고 짧게 대답한 뒤 연락이 끊겼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정씨는 추자항으로 돌아와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정씨는 “날씨가 좋지 않아 출항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가슴을 쳤다.

통화가 두절될 즈음 돌고래호에선 악천후와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구조된 이모(49)씨는 “기상 상태가 악화되자 배가 해남으로 돌아가기로 결정된 뒤 선수 쪽 아래 선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고, 당시 9명가량이 선실에 있었다”며 “출항한 지 불과 20분도 안 됐을 때 배가 ‘쾅쾅’ 소리를 내며 옆으로 뒤집히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완전히 전복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잠을 자고 있던 동생들 5명 정도는 못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스박스를 붙잡은 상태에서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씨는 “갑자기 사고가 나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벽을 잡고 배 위로 올라가 겨우 살았다. 배가 전복된 뒤 1시간가량 지나 숨진 사람들이 물 위로 떠오른 것을 목격했다”며 끔찍했던 상황에 몸서리를 쳤다.

또 다른 생존자 박모(38)씨는 “너울이 세게 쳐서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며 “배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선장이 밖으로 나가라고 해 맨 마지막으로 배에서 빠져나가자 동시에 배가 뒤집혔다”고 말했다.

박씨와 이씨는 뒤집힌 배의 난간을 잡고 위로 올라가 다른 생존자들과 같이 구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7명가량이 배에 매달려 있었으나 힘이 부치는 사람들은 한명씩 떨어져나가 나중에는 3명만 남게 됐다. 박씨는 “다른 승선자도 뒤집어진 선박 위에 올라와 있었으나 강한 풍랑에 일부가 바다로 떨어져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전했다.

전복된 선박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도 처절했다. 체온이 떨어져 정신을 잃을까봐 서로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해경 함정이 멀리 지나가는 게 보일 때는 ‘살려 달라’고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지만 불빛도 비추지 않고 가버려 낙담하기도 했다.

이들은 “우리는 밧줄 한쪽을 스크루에 매고 다른 한쪽은 서로의 손에 묶은 채 힘이 빠져 떠내려가려 하면 밧줄을 당겨 잡아줬다”며 “그렇게 30분만 더, 1시간만 더 버텨보자며 견디고 있을 때 어선 한 척이 다가왔다”고 회고했다. 돌고래호가 6일 오전 6시25분쯤 다른 어선에 발견될 때까지 11시간 가까이 차가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인 셈이다.

정부는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추가 생존자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추자 대물호 최기훈(43) 선장은 “추자도는 42개 부속 섬으로 구성돼 있어 생존자가 인근 섬으로 피신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 선장은 “점퍼에 꽁꽁 묶인 아이스박스 3개를 찾았는데 전복 위기를 맞은 그 짧은 순간에 살려고 발버둥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며 “계속해서 섬을 집중적으로 수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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