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업체에서 골프 접대 등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536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그런데 기소된 사람은 4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불법적인 뒷돈을 받고도 처벌을 피한 것이다.
서울서부지검은 불기소 이유로 ‘300만원 기준’을 제시했다. 금품 수수액이 300만원 미만인 의사는 기소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6일 “300만원 기준은 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의 자격정지 기준을 참고해 임의로 정했다”고 밝혔다.
다른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도 300만원을 기준으로 처벌 대상을 분류하고 있다. 수사대 관계자는 “대부분의 리베이트 수사에서 처벌 기준은 300만원”이라고 했다.
제약회사에서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에게 ‘300만원’은 이렇게 중요한 숫자다. 최근 관행상 그 밑으로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과 자격정지를 모두 피할 수 있다. 이 300만원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했을까.
◇감사원도 “불합리” 지적한 300만원 기준=검·경의 설명대로 의료법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서 300만원은 결정적 기준이 돼 있다.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받은 의료인’은 1차 적발 때 수수액이 300만원 미만이면 경고 처분만 받는다. 300만원 이상부터 2개월 이상 자격정지에 처한다. 이 조항은 2013년 3월 규칙 개정을 통해 생겼다.
의약품 리베이트와 관련해 300만원이란 숫자가 처음 등장한 건 이보다 앞선 2011년 8월이다. 복지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의약품 리베이트를 받은 의·약사 2407명 중 300만원 이상을 받은 경우만 면허정지를 하겠다고 밝혔다.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함께 처벌하는 ‘쌍벌제’ 실시(2010년 11월) 전에 금품을 수수했다가 뒤늦게 적발된 의·약사를 처벌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복지부는 300만원을 기준으로 삼은 두 가지 근거를 댔다. 첫째는 대법원 판례였다. 복지부가 과거 290만원어치 식사 접대를 받은 의사의 면허자격을 정지한 일이 있었는데 대법원이 이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근거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공무원 범죄 고발 기준이다. 권익위는 공무원에 대한 형사고발 기준을 '직무 관련 300만원 이상 금품·향응을 받았을 경우'로 제시하고 있다. 복지부는 둘을 내세워 2407명 중 16.2%(390명)에 대해서만 2개월 면허정지 절차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듬해 10월 감사원은 이 조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감사원은 대법원 판례에 대해 "290만원이란 리베이트 액수를 이유로 의사 면허정지를 취소한 판결이 아닌데 복지부가 그 액수만 인용했다"며 "판례의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익위 지침을 근거로 삼은 데 대해서도 감사원은 "300만원 미만 수수자에 대한 행정처분 면제의 근거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복지부가 8만원을 받은 사람도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한 전례가 있다는 사실도 명시했다. 감사원은 복지부에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는 정책 방향에 스스로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300만원 미만 리베이트 수수자에 대해서도 행정처분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공식 통보했다.
◇사실상 '면죄 기준' 300만원…솜방망이 처벌 되풀이=하지만 2013년 3월 복지부가 개정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는 300만원이 행정처분의 중요 기준으로 버젓이 자리 잡았다. 300만원 미만 리베이트는 1차 적발 시 경고 처분만 받게 한 것이다. 당시 개정된 규칙은 처벌 기준을 벌금액에서 수수액으로 바꾸고 위반 횟수에 따라 자격정지 기간을 늘리는 등 처벌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리베이트 수수자에 대한 사실상의 면죄 기준을 제시했다. 수사기관의 300만원 기준은 결국 복지부가 제공한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수사기관이 300만원을 처벌 기준으로 정한 건 그들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 "감사원 지적은 쌍벌제 이전의 금품수수에 대해 처벌 기준을 정한 2011년 조치에 관한 것이었지 행정처분 규칙에 관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
복지부는 그러면서도 행정처분 규칙의 300만원 기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만 "경고도 누적되면 가중처벌을 받기 때문에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쌍벌제 도입 이후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에선 수사기관의 단속과 솜방망이 처벌이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가 의사협회, 제약협회 등 관련 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시민단체는 리베이트 문제를 의·약사 처벌로 해결하겠다는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약을 처방할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이 의사에게 있는 한 이들을 규제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면서 "제약산업 중심의 약가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석 신훈 기자 keys@kmib.co.kr
리베이트 의사 536명 중 4명만 기소한 까닭… 300만원 미만 면죄부 복지부 ‘이상한 잣대’
입력 2015-09-07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