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난민의 ‘소리 없는 비명’ 사진기자 “어린아이 시신에 충격… 이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입력 2015-09-07 02:10
터키 남부 보드룸 해안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에일란 쿠르디 시신을 발견해 세상에 알린 터키 도안통신의 닐류페르 데미르 사진기자(왼쪽). 숨진 쿠르디의 고모인 티마 쿠르디(앞줄 가운데)가 5일 조카의 추모식이 끝난 뒤 흰 풍선을 날리기 위해 캐나다 밴쿠버 해안으로 걸어가고 있다. 도안통신·AP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오전 6시 터키 남부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 시리아 출신 세 살배기 에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누워 있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한 여성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겨 온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이의 절규를 세상에 들리게 하는 것이었다”고 닐류페르 데미르(29)는 4일 말했다.

아이에게 닥친 비극을 세상에 알려야 했던 터키 도안통신의 데미르 기자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보드룸에 주재하는 데미르 기자는 당시 파키스탄 난민들이 그리스의 섬들로 가려는 장면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그녀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쿠르디를 본 순간 겁에 질려 얼어붙었다”면서 “시신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고 슬펐지만 이 비극을 빨리 세상에 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전했다.

그날 쿠르디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얼굴을 모래사장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데미르 기자는 근처에서 아이의 형 갈립(5)도 발견했다. 그녀는 “갈립은 동생이 누워 있던 지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며 “그 아이 역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구명조끼나 튜브 등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는 장비는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진을 찍을 때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쿠르디 사진은 온 세계를 슬픔과 죄책감에 빠뜨렸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난민 수용 문제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사이 이렇게 많은 희생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녀가 찍은 사진이 세상에 준 ‘경고'는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린 ‘네이팜탄 소녀’ 사진에 비견할 만했다. 1972년 6월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는 베트남 소녀 킴 푹의 사진이 세계 각지 신문을 장식했다. 이 사진은 반전(反戰)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40여년 전 푹 사진으로 미국 시민들이 전쟁의 공포에 직면하고 반전 시위에 나섰다”면서 “쿠르디 사진도 난민 사태에 유사한 수준의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관계자는 미국 공영방송 NPR에 “쿠르디 사진을 보고 곧바로 우리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다”면서 “사람들이 난민 사태를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갖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