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중환자실이 제 역할 하려면…

입력 2015-09-08 00:02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대한민국 중환자의학은 개선이 시급하다. 시작이 늦은 것도 아닌데,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 비해 수준이 많이 뒤떨어져 있다.

중환자는 대부분 여러 장기의 손상을 동시에 갖고 있기 십상이다. 또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제한돼 있어 매 순간 의료적 결정이나 행위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따라서 제한된 전문 지식인만으로 중환자를 적절히 진료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환자실의 진료수준을 높이려면 중환자의학 전문 의사 양성과 부실하기 짝이 없는 관련 법률의 손질이 시급하다.

먼저 우리나라 의료법은 ‘중환자실에 전담의사를 둘 수 있다’라고 돼 있을 뿐 전담 의사를 필수조건으로 강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중환자실 전담 의사에 대한 자격 규정이 있을 리 없다.

중환자실 전담 의사는 효율적 중환자실 운영과 진료 및 교육,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이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이나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중환자실 전담 의사를 전문의로 규정, 상주 근무를 필수조건으로 관련 법률에 규정하고 있다.

우리처럼 순환 근무하는 전공의나 인턴을 중환자실 전담 의사로 운용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전공의와 인턴을 중환자 전담의사로 삼는 것은 중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되레 금지하고 있다.

중환자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의(인정의)가 중환자실을 책임 마크하도록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 전담 의사를 두게 되면 중환자실 사망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환자실 전담의사는 제한된 중환자실 재원에서 효율적인 입·퇴실 관리로 병상 회전율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사망위험이 높은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또는 중증 패혈증, 패혈 쇼크 환자들한테는 안전을 책임지는 구원병 역할을 한다.

또 우리나라 중환자 진료수가는 2008년 중환자실을 등급화하고 병실료도 소폭 올렸지만 여전히 원가의 30∼50%선에 불과하다. 이래가지곤 적정진료를 기대할 수가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보고서(2004년)에 따르면 중환자실 환자들이 쓰는 의료비는 국내 전체 의료비의 약 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퇴원 후 1개월 내 사망률은 약 23.3%였다. 이는 중환자실이 위중한 환자들을 살려내는 곳이 아니라 결국 죽을 사람들이 죽기 전에 거치는 정거장쯤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중환자들의 진료환경 개선과 치료율 향상을 위해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