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해변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 익사체로 발견돼 전 세계를 울린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소년 에일란 쿠르디의 안타까운 사연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난민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난민에 대한 대책이 지지부진하자 헝가리의 열차 운행 중단으로 부다페스트의 역사에 발이 묶였던 수천명의 난민들이 4일 역에서 탈출해 170㎞ 여정의 오스트리아 국경을 향해 도보 행진을 펼쳤다.
시리아 출신이 대부분인 난민들은 헝가리 정부 방침으로 이틀간 열차 운행이 중단되자 이날 오후 일제히 역을 나와 오스트리아를 향하는 도로를 따라 행진했다. 헝가리 경찰이 저지에 나섰으나 워낙 숫자가 많아 경찰 저지선이 뚫렸고, 곧바로 수천명의 난민이 선발대를 따르면서 경찰도 손을 쓰지 못했다.
다수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난민들은 차가 달리는 도로가를 위태롭게 걸었으며 행렬이 워낙 길어 경찰이 이들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난민들은 “열차가 운행되지 않으면 걸어서 서유럽으로 가겠다”면서 행진을 방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에일란 사건으로 유럽에서 난민 수용에 가장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영국도 움직이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에일란 사건을 계기로 수천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는 방안을 수일 내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회원국들에 16만명의 난민을 분산수용할 것을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일랜드도 최소 1800명의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에일란의 안타까운 사연이 추가로 전해지면서 전 세계를 다시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에일란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40)는 3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침이면 같이 놀아 달라고 어김없이 나를 흔들어 깨우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면서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울먹였다. 압둘라는 2일 가족과 함께 터키에서 그리스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다 에일란과 5세 갈립, 아내를 잃었으며 이날 시리아로 돌아와 가족들을 땅에 묻었다. 그는 “평생 무덤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고모 티마 쿠르디는 “조카들은 더 나은 삶을 원했을 뿐 죽을 이유가 없었다”며 “난민을 온전히 돕지 않는 전 세계를 원망한다”고 말했다. 또 “조카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이어진 내전 때문에 한번도 행복하게 살아보지 못했다”면서 “에일란은 2주 전 나한테 자전거를 사 달라고 했었는데…”라며 흐느꼈다.
에일란은 숨졌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은 듯하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에일란이 숨진 뒤 국제 난민구호기구와 어린이 관련 기관에 기부금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에서 에일란의 이름을 따 개설된 모금펀드에 하루 만에 473명이 1만5286파운드(약 3000만원)를 기부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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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05 00:54 수정 2015-09-05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