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여든다섯이 되어…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피눈물을 말로 못하고 글로 다 쓰면 가슴이 미어질까봐 썼다 찢고, 썼다 찢었어. 여보, 당신이라고도 못 불러 본 남편을 ‘영감’이라고 적던 날 밤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사랑이 이런 거구나 싶어.”
“시를 어떻게 쓰시게 됐어요?”란 질문에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깨고 울음소리가 들렸다. 42년 전 떠난 남편을 그리며 마음에 쟁여뒀던 낱말 하나하나가 한평생 쌓인 눈물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경례(84·사진) 할머니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2월 스무 살에 시집을 갔다. 험난한 신혼살이였다고 한다. 남편은 이듬해 봄 전쟁터로 갔고, 죽은 줄만 알았다. 기적처럼 돌아왔지만 병을 앓던 남편은 마흔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4남매를 키우며 시어머니까지 모시려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다 해도 부족했다. 모진 세월을 견디며 차마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은 응어리로 마음에 남았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시로 쓰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학교 한 번 다녀보지 못한 탓에 아는 글자라곤 어깨너머로 배운 이름 석 자뿐이었다.
그런 이 할머니가 공짜로 글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시청으로 달려간 게 2013년이었다. 전북 군산시 늘푸른학교에서 글을 읽고 쓰는 ‘문해(文解) 교육’을 받았다. “그게 장님 눈뜨게 하는 거야.”
글을 익히자 심장 속에서 맴돌던 시어(詩語)도 눈을 떴다. 밤마다 남몰래 조금씩 종이에 옮겼다. 함께 사는 막내아들이 ‘안 주무시냐’고 물을 때마다 TV 핑계를 댔다. 이렇게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라는 시가 태어났다.
‘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
이 할머니는 ‘제4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 공모전’에서 다른 8명과 함께 교육부장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고령 수상자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한민국 문해의 달’을 선포하고 시상식을 갖는다.
이 할머니에게 남편의 이름을 물었다. 얼마나 그리운지도 물었다. “뭐 그런 걸 자꾸 물어봐 부끄럽게.” 새색시 같은 수줍은 대답이 돌아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80대 할머니의 ‘思夫曲’… 2013년 ‘文解교육’ 받은 이경례씨 일찍 사별한 남편 그리워하는 詩
입력 2015-09-05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