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나타났다. 36층의 벨뷰룸에서 금발의 서양인과 인도계 중국계 일본계 등 다양한 피부색의 주한 외국은행 대표들이 그를 맞았다. 마이크를 잡은 임 위원장은 “외국은행가 모임(FBG)에 한국 금융위원장으로는 처음 저를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국내에 진출한 외국 은행의 어려움을 적극 해소하는 것도 금융개혁 차원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모임은 시종 화기애애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외국 은행들이 영업하고 있는지 오늘 처음으로 실감했다”며 “다음에는 조찬이 아니라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분위기도 좋았다”고 전했다.
임 위원장은 지난 3월 금융위원장에 취임한 뒤 줄곧 금융개혁을 외쳐 왔다. 그가 생각하는 개혁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보텀업(Bottom Up)’ 방식이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현장점검 간담회에서는 임 위원장이 먼저 “우리 편하게 얘기하도록 상의를 탈의하자”면서 재킷을 벗었다. 은행·보험·카드 등 업계 현장에서 온 부장급 실무자들은 함께 윗도리를 벗으며 장관 앞에서 긴장했던 마음도 풀었다. 임 위원장은 팀장·부장들의 의견을 일일이 메모하면서 빠짐없이 대답했다. 때로는 “정부만 아니라 금융회사들도 개혁할 것은 개혁해야 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금융위는 4월부터 200곳이 넘는 금융회사와 단체를 방문해 2400건이 넘는 건의를 받았다. 현장에서 바로 답변할 수 있는 것은 즉석에서 답변하고, 법령 해석도 담당자를 연결해 즉시 알려줬다. 즉답이 어려운 건의사항 1400여건도 모두 짧은 시간 안에 답을 줬다. 의견을 수용한 것도 40%가 넘는 662건이고, 추가로 검토하거나 업계 전반의 의견을 청취하기로 한 추가검토 사항도 380건에 이른다.
현장을 중시하는 임 위원장의 금융개혁 행보는 금융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이수창 회장은 “이렇게 현장을 자주 방문하고 귀를 기울인 금융위원장이 없었다”며 “역대 금융위 수장 중에서 최고”라고 말했다. 현장점검반의 방문을 받았던 업체들도 처음엔 감사라도 받는 줄 알고 바짝 긴장했다가 정말 자세를 낮추고 현장의 건의사항을 경청하는 모습에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금융위가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낮은 자세로 의견수렴을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82.3%였고, 특히 금융업계 실무자들은 절대다수인 96.5%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자들과도 2일 간담회를 가졌다. 임 위원장은 “앞으로 매달 기자들을 만나 금융개혁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알려드리고 어떤 질문이든 받겠다”고 말했다. 이런 스킨십 역시 금융개혁의 일부다. 임 위원장은 “취임 이후 금융개혁을 그렇게 외쳐 왔는데, 정작 전문가들을 만나면 ‘금융개혁이 뭐하는 거냐. 소리 소문 없이 되는 거냐. 이런 얘기를 해서 사기가 굉장히 떨어졌었다”면서 “여론의 지지를 좀 더 받아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해보자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열심히 뛰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 멀어보인다. 금융위가 임 위원장의 기자간담회에 맞춰 발표한 금융회사 제재 강화 방안을 들여다보면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사후 처벌을 강화해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했다지만 정작 피해자인 고객을 보상하는 방안은 빠져 있다.
금융회사와 이용자 사이 분쟁도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면 금융위나 금융감독원 모두 손을 놓아버린다. 시간과 돈 모두 부족한 개인만 손해를 감수하기 십상이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금융소비자 집단소송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며 “혁신한다고 말만 하지 실제 근본적인 문제는 손대지 못하고 업체들의 민원만 들어주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개혁의 대표상품인 핀테크 혁명과 인터넷은행 도입도 실제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현장에선 토로했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아직도 액티브엑스 없이는 온라인 거래가 어렵다”며 “금융위에선 다 풀었다고 하지만 정작 다른 부처에서는 계속 규제를 하고 있어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이 역시 온라인 결제의 책임을 이용자에게 전가하는 현재의 규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wide&deep] 현장서 빛난 임종룡의 스킨십… 근본 개혁은 아직 노터치
입력 2015-09-05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