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을 알린 한 장의 사진은 북아프리카·중동 난민 사태가 얼마나 참혹하고 비극적인지를 말해준다. 시리아 태생인 쿠르디는 터키 휴양지인 보드룸 해변에 엎드려 누운 채 얼굴은 반쯤 모래에 파묻혀 차가운 바닷물을 맞고 있었다. 아기 엄마와 다섯 살짜리 형의 시신도 근처에서 난파된 배의 잔해와 함께 발견됐다.
지난달 26일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 부근에서 시리아 탈출 난민 71명이 질식사한 냉동트럭이 발견됐다. 그 다음 날에는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 2척이 뒤집혀 짐칸에 있던 난민 200여명이 익사했다. 지난 4월에는 리비아 해안에서 역시 난민선이 침몰해 770여명이 떼죽음 당한 적도 있다.
지중해에서 발생한 비참한 죽음은 최근 1년 동안 3500명을 넘는다. 지중해를 통한 중동·아프리카 난민은 35만명으로 추산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사태다. 오로지 생명 유지를 위해 탈출하는 난민들을 이 지경으로 방치하는 것은 문명국가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다. 국제법은 각국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난민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의무를 지우고 있다.
독일과 스웨덴, 이탈리아는 비교적 난민을 수용하고 있고, 프랑스 등은 다소 인색하다. 헝가리는 아예 175㎞의 철조망을 세우는 등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제 난민 문제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은 당연하고 국제사회 전체가 나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글로벌 인도적 이슈로 다뤄야 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도 적극 개입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이 외무장관, 내무·법무장관 회의를 잇따라 열면서 난민쿼터제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책이 늦으면 늦을수록 난민들의 죽음을 더 봐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급하다. 지구상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렇게도 없다는 것인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사설] 유럽 난민 사태에 선한 사마리아인은 없나
입력 2015-09-05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