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상관하지 맙시다

입력 2015-09-05 00:44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묻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젊어서는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원치 않는 곳으로 갈 것이다.” 이는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전한 것입니다(19절).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한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20절). 그는 만찬석에서 “주님을 팔 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러 있게 할지라도 너는 무슨 상관(相關)이냐”고 답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는다고 오해합니다.

베드로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배반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은혜 입은 사명자’입니다. 어떠한 죽음으로 영광을 돌릴 것인지, 그 길을 압니다. 또 하나는 주변 사람을 상관하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상관이 찾아오면 불안합니다. ‘보라 이만한 사람이 없다’고 칭찬받던 초대 왕 사울도 다윗을 상관한 뒤로 광기의 인간으로 추락합니다. 나라도 가족도 다 불행하게 끝납니다.

요한복음에는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말씀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마지막은 싱겁게 베드로 등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선교 공동체의 상황 때문입니다. 믿음의 첫째와 둘째 세대는 박해와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이후 세대는 풍요의 시대입니다. 교회 생활이 문화가 되면서 세속이 깊이 들어옵니다. 이때부터 성도들은 신앙생활에서 사람과 환경을 상관하기 시작합니다. 박해의 시대에는 말씀에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관’이 깊은 영적 병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동체가 힘을 잃습니다. 상관하기 시작하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해도, 어떤 가르침을 받더라도 넘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상관하지 말고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십니다. 상관하지 않을 때 비로소 불안을 이길 수 있습니다. 상관하면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알아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을 상관하는 한 자신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합니다. 좋은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상관하지 않을 때 사명은 외로움이 아니라 ‘누림’이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메시아적 희망을 붙들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이자 사명자로서 부름 받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단계의 부름이 있습니다. 주변과 사람 상관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참 자기로의 부름’입니다. 상관하지 않으려면 영혼의 힘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말씀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제자로서, 사명자로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참 자기로의 부름’에 응답합시다. 그래야 “상관하지 말고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 공동체에 주셨던 그 말씀, 위기의 시대를 사는 주님의 종과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정병길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기독교농촌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