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세대가 버스로 떠나는 세계여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여행작가 임택(55·페이스북 아이디 lim taek) 권사는 청와대 옆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궁정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대방로 대림교회 임준택 감독의 막냇동생이다. 임 감독은 동생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은근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집안에서 처음으로 장로가 한 명 나오는 ‘장로피택’ 경사를 마다하고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겠다는 동생을 말릴 수 없어서였다. 그것도 폐차장으로 가야 할 마을버스를 몰고 위험천만한 이벤트를 벌이겠다니 말이다. 임 권사는 장로 피택을 받고 떠나면 어떻겠느냐는 담임목사의 권유도 뿌리치고 기어코 일을 벌였다.
그는 왜 장로직도 고사하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것일까.
임 권사는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와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면서 “이제 반환점을 돌고 인생을 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중년들이 폐차 직전의 마을버스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는 모험적 여행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인생 2모작’ 준비하는 5060세대를 위한 여행
지난달 아메리카 횡단을 마치고 잠시 귀국한 임 권사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의 한 카페에서 ‘시즌2, 3’ 일정표를 들고 향후 여행계획을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출발한 마을버스는 경기도 평택항에서 배로 페루 리마로 옮겨진 뒤, 중남미 21개국 투어를 마치고 미국 마이애미에서 ‘시즌 1’을 마무리했다. 7일부터 유럽-아프리카-동유럽을 잇는 ‘시즌 2’의 4개월 장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오랫동안 길 위의 생활을 해서인지 많이 지친 임 권사는 “그래도 떠났더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30대 중반부터 5060세대가 되면 하는 일을 중단하고 여행하며 살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말로만 끝내지 않기 위해서 그는 전화번호 끝자리를 5060으로 했다. 마침내 50세가 됐을 때 그는 ‘천군만마’ 마을버스를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은수’(12번 마을버스 은수교통)를 보면서 직장인과 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베이비부머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평생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다니던 폐차 직전 낡은 버스가 안데스의 험한 고지를 넘고 사막을 가로질러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임 권사는 은수를 본 순간 쳇바퀴처럼 살아온 5060세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새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10년간 46만㎞를 달린 은수를 동반자로 선택했다. 처음 5명으로 시작한 여행팀은 현재 후배 작가와 단둘이 남았다.
여행에서 얻는 최고의 선물은 역시 사람 냄새
임 권사는 여행에서 얻는 최고의 선물은 역시 사람이라고 한다. 볼리비아 사막에서 그만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사방에 모래폭풍이 불고, 기름은 떨어지고, 밤은 다가와 큰일이었다. 그때 사막의 노동자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 이 세상 구경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낯선 이방인들에게 밥을 주고, 재워주고, 차에 기름도 넣어주는 것이었다. 콜롬비아 안데스 고원 도로에선 차에 이상이 생겼는데, 지나가던 트럭기사들이 서로 고쳐주려고 달려왔다. 그들은 차 밑을 살펴보고 고민하더니 연료 필터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마야인들이 사는 오지 마을은 임 권사가 꼭 가보고 싶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3일을 예정한 과테말라시티의 여정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떠나려고 하는 순간 또 다른 선교팀을 만나게 됐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한국인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임 권사는 여정을 멈추고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의료봉사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임 권사는 크리스천 의사들로 구성된 안과 의료팀을 만났다. 병원에 들어서자 과테말라 전역에서 온 백내장 환자들이 가득했다. 이날 하루만 55명의 백내장 환자들의 수술을 했다. 의료선교사는 안식년을 해외봉사로 대체한 김동해(명동안과의원) 원장이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마야인이었다. 앞을 못 보는 이유가 백내장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온 이들이다. 연로한 원주민 환자가 김 원장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하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했다.
임 권사는 김 원장과 작별하고 과테말라를 떠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냥 가도록 두지 않았다. 쌌던 배낭을 다시 풀었다. 또 다른 선교일정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임 권사는 미국에서 온 목사님들을 따라 성경교재를 가르치는 사역에 동참했다. 하루 2000명의 교사가 성경교재 활용방법을 한국인 목회자들로부터 배우는 곳이었다.
-왜 50세에 은퇴하려는 계획을 세웠나.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어요. 이제 곧 ‘청년노인’의 시대가 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노인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나머지 30년을 산다면 국가적으로 큰 재앙입니다. 건강한 청년노인들은 25년간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합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생 2모작’은 좀 다릅니다. 적어도 후반부의 직업은 ‘평생 그토록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고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 일을 하자는 겁니다.”
-막상 소원대로 세계여행을 떠났지만 난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 데.
“페루는 아시다시피 마추픽추라는 공중도시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저를 감동시킨 것은 마추픽추도 티티카카호도 아닙니다. 은수가 넘기에는 예상대로 위험천만했지요. 공기가 희박해서 엔진이 제대로 돌지 않을 정도였죠. 구름과 차와 내가 나란히 있었어요. 운전을 했는데 절벽을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겁니다. 한 길 낭떠러지가 바로 옆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1m도 여유가 없어요. 브레이크라도 파열되면 다 죽는 거죠. 거길 내려오는데 다리에 쥐가 나더라고요. 더욱 겁나는 것은 길옆에 세워진 무수한 십자가였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십자가죠. 얼마나 많이 죽었으면 십자가가 수십 개씩 있어요. 그런 장소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그걸 넘어온 걸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해요. 폐차됐어야 할 마을버스가 세계의 지붕을 넘어왔다는 게 상상이 가나요? 하지만 은수는 아주 씩씩하게 그 험준한 산맥을 넘은 겁니다. 성경말씀처럼 눈동자처럼 지켜주셨던 거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콜롬비아를 자동차로 여행할 때의 일입니다. 산굽이를 돌다가 그만 차가 서버린 겁니다. 정비가 가능한 도시까지 아주 멀고 정비 지식도 없는 나로서는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트럭이 서더니 운전기사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내 차를 이리저리 보더니 자기가 고치는 거예요. 냉각장치가 새서 물이 없다는 겁니다. 엔진이 과열된 거죠. 그는 자신의 차로 가더니 물통을 가져와 물을 보충해 줬습니다. 그리고 차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가 새는 곳을 찾아내서 비누로 그곳을 막아주었습니다. 얼마 안 가면 정비소가 있으니 거기 가서 때우라고 하면서 그냥 가는 겁니다. 이게 여행이죠. 우리가 곤경에 빠질 때마다 도와주었던 그분들의 이야기는 정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여행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사람 사는 냄새’입니다.”
임 권사는 에콰도르를 통해 콜롬비아로 넘어왔을 때의 ‘아찔했던 순간’도 들려줬다. 국경을 넘으면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했다. 안데스 산맥을 거의 다 넘어와서 한참 달리는데 군인들이 길가에 엎드려 있었다. 당시엔 잘 몰랐지만 모두 실탄을 소지하고 수십 명이 총구를 한 방향으로 대고 있는 것이었다. 일행은 ‘아이고 참 경계도 실전처럼 하네?’하고 웃고 지나왔단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정부군과 게릴라들이 교전 중인 지역을 넘어온 것이었다. “콜롬비아 여행을 자제하고 철수하라.” 기억에 남는 것은 일행이 그 지역을 지나오는데 외교부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시즌 1’을 한마디로 결산한다면.
“신명기 32장 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는 말씀과 시편 17편 8절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라는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겼습니다.”
-앞으로의 여행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뉴욕에서 독일의 브레머하벤이라는 항구로 은수를 보냈습니다. 이제 마을버스 세계일주의 시즌2가 시작되는 거죠. 독일을 시작으로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로 갑니다. 튀니지에서 페리를 타고 이탈리아로 간 다음 동유럽으로 가죠. 크로아티아를 지나 터키에 가면 ‘시즌 3’가 시작됩니다. 남아시아 10국을 돌고 중국을 마지막으로 귀국합니다. 북한 땅을 통과해 부산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마음 속의 길] 5060세대가 버스로 떠나는 세계여행 프로젝트… 성경 말씀이 두 눈 되어 길을 밝혀주십니다
입력 2015-09-05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