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을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됐던 북한이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번 행사에 북한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온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다른 국가 정상이나 외교사절과도 별다른 면담 계획을 잡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전날(2일) 시 주석 내외가 주최한 공식 환영만찬에서도 최 비서는 시 주석과 잠깐 조우하긴 했지만 의미 있는 만남은 갖지 못했다. 최 비서는 3일 베이징 천안문(天安門) 성루의 말석(末席)에 앉아 열병식을 지켜보며 북한의 ‘초라한 현주소’를 절감해야 했다.
정부 소식통은 “최 비서가 중국 및 여타 참석국 수반들과의 특별한 일정을 잡지 못한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친서를 시 주석에게 전달하는 등 중국과의 각별한 관계를 드러낼 만한 어떤 움직임도 없다”고 밝혔다.
각국 정상과 대표단이 중국에 도착해 치열한 외교 탐색전을 벌였던 전날에도 최 비서는 눈에 띌 만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후 5시쯤 중국에 도착한 그는 환영만찬에만 참석한 뒤 종적을 감췄다. 행사장에서 이뤄진 단체 접견에서 시 주석과 인사를 나눌 기회는 가졌지만 역시 개별 면담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장 자리도 박근혜 대통령이 ‘헤드테이블’에 앉은 것과 달리 무대 쪽 제일 끝자리에 배치됐다.
다음날 치러진 열병식 전후에도 유의미한 회동은 포착되지 않았다. 최 비서는 시 주석과 의례적인 악수만 한 뒤 냉담한 중국의 반응을 실감했다. 1954년 중국 6차 열병식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바로 오른쪽에 앉았지만 이번에 최 비서는 천안문 성루의 오른쪽 제일 구석으로 밀려났다. 김 주석과 최 비서의 위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혈맹국’ 입지로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최 비서는 이날 열병식이 끝난 후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안다”며 “그 전에 시 주석과 면담을 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확률은 높지 않다”고 했다. 최 비서는 중국 입국 시에도 고려항공 특별기가 아닌 일반 항공편으로 중국에 도착해 김 제1비서의 특사 자격이 아닌 단순한 대표단 단장 자격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단도 노광철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이길성 외무성 부상 등 3명뿐이었다. 최 비서의 방중은 2013년 5월 이후 2년여 만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전승절을 계기로 북·중 관계의 극적인 회복을 모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과 비교되는 중국 내부의 냉랭한 반응, 한·중 정상회담을 통한 대북 압박 등이 구체화되면서 북·중 사이의 위기만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당분간 포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중 관계 발전에 대한 앙금이 큰 데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며 자신들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고 주장하는 북한으로선 다음 기회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할 개연성이 크다. 김 제1비서가 참석하거나 특사 파견 등으로 먼저 화해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대중 관계를 전담해온 최 비서를 통해 중국 속내만 떠본 것도 이 때문이란 해석이다.
북한은 중국을 ‘줏대 없는 나라’라고 비난할 정도로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김 제1비서는 2011년 집권 이후 시 주석을 단 한 차례도 만나지 못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재 북한의 대외관계 1순위는 중국이 아닌 러시아”라며 “최 비서는 북·중 현안 타결이 아닌 축하 사절단 정도의 역할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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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04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