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뭐라도 좀 하세요!”… “인도주의가 익사했다” 충격에 빠진 유럽

입력 2015-09-04 02:28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 지역에서 마케도니아 군인이 2일(현지시간) 우는 난민 아이를 달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르비아와 헝가리 국경 지역에서 2일 한 난민이 아이를 안고 헝가리로 향하는 철로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여객선을 타고 1일 그리스 최대 항구 피레아스항에 도착한 난민들이 하선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오스트리아 빈의 베스트반호프역에서 1일 한 난민 소녀가 고단한 여정에 지쳐 쪽잠을 자고 있다. AFP연합뉴스
터키 해변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어린이 에일란 쿠르디(3)의 죽음이 유럽의 이기심을 씻어낼 수 있을까. 난민의 참상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가운데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여전히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서로 날을 세우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일(현지시간) 쿠르디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유럽이 시리아 아이의 사진을 보고도 난민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바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허핑턴포스트는 난민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뭐라도 좀 하라”고 지적했다.

난민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나라는 난민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이자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독일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 6월까지 난민들이 망명 신청을 가장 많이 한 EU 국가는 독일로, 망명 신청자 수가 54만명을 넘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4월 리비아 해안에서 벌어진 난민선 전복 참사 이후 끊임없이 EU 정상들에게 난민 수용 부담을 서로 나누고 체계적인 난민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첫 EU 도착지와 상관없이 독일에 망명 신청을 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하기도 했다. 전날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는 시민들이 기차로 도착한 난민들을 위해 생수, 음식 등을 제공하는 등 환영했다.

이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곳은 영국이다. 캐머런 총리는 EU의 난민 분산 수용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는가 하면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의 무리를 ‘떼’라고 비하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쿠르디의 죽음을 접한 이후에도 “영국이 더 많은 난민을 받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는 입장이어서 비난은 더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비인도적 태도에 영국 내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팀 패런 영국 자유민주당 당수는 캐머런 총리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Enough is enough)”면서 “시리아 어린이의 충격적인 사진은 캐머런에게 잠에서 깨라고 말하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난민 문제에 비협조적인 것은 영국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을 그야말로 ‘떼어버려야 할 혹’처럼 여긴다.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난민 대부분이 경제적 이유로 넘어오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한술 더 떠 “난민 위기는 독일의 문제지 유럽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난민들은 모두 독일로 가고 싶어 하지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에 있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코 경찰은 전날 브레클라브역에 도착한 난민 200여명의 팔에 펜으로 숫자를 표기해 과거 나치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팔에 번호를 적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위스는 망명 신청자 수를 줄이기 위해 10월부터 불법 난민 승객을 태우는 항공사에 벌금을 부과한다는 ‘꼼수’를 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 주요 3개국 외무장관은 EU 국가의 망명 허용 기준을 개선하고 EU 회원국이 공정하게 난민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3일 “회원국들이 적어도 10만명씩 난민을 분산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오는 14일 개최할 긴급 내무장관 회의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