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전승절 열병식] 한·중·러 ‘열병외교’… 동북아 新패러다임

입력 2015-09-04 03:06
박근혜 대통령이 3일 베이징 천안문 성루에서 열린 중국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선글라스를 낀 채 자리에 앉아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서 핵심 관전 포인트는 한·중 정상의 자리 배치였다. 열병식 행사 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바로 왼편에 앉아 ‘한·중 밀월’을 과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3일 열병식 현장에서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오른편 두 번째 자리에 착석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 사이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리했다. 박 대통령의 자리로 예상됐던 시 주석의 왼편에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앉았다.

중국은 열병식 행사에서 시 주석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전직 중국 지도자와 공산당 및 정부 고위인사들을, 오른편에는 외국 정상과 해외 사절단을 배치하기로 원칙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과 박 대통령 다음으로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외가 자리했다.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오른쪽 끝에 앉아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시 주석 바로 오른편에 푸틴 대통령을 배치한 건 2차대전 승전국이자 오랜 혈맹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중·러 대 미·일’의 전통적 구도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번 행사를 통해 ‘군사굴기(軍事?起)’를 통한 미국과의 본격적인 ‘세계 2강(G2)’ 경쟁시대를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 바로 다음에 박 대통령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중국에 한국은 러시아만큼이나 중요한 나라라는 점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아무런 의도 없이 이런 좌석 배치를 했으리라 보기 힘들다”면서 “의전을 두고 한·중 양국 간 상당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 정상이 시 주석을 중심으로 푸틴 대통령과 ‘삼각편대’를 이루는 상황을 피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으로 한·미·일 삼각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불식시키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이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두고 “한국은 이제 중국편이 됐다”는 비난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번 열병식 행사 전후로 시 주석을 중심으로 자리가 5번이나 바뀌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통령은 행사 시작 전 정상 및 외빈들과의 단체 기념촬영에서 시 주석 부인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를 사이에 두고 시 주석의 왼편에 섰다. 시 주석 오른편에는 푸틴 대통령이 자리했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행사장에 입장하기 전 시 주석 내외와 기념촬영을 할 때는 시 주석의 오른쪽에서 사진을 찍었다.

박 대통령은 단체 기념사진 촬영 후 시 주석 및 다른 정상들과 함께 선두에 서서 천안문 성루로 이동했다. 시 주석 오른쪽에는 푸틴 대통령이, 왼쪽에는 박 대통령이 서서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성루에 오른 뒤에는 다시 자리를 바꿔 푸틴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시 주석과 나란히 섰다. 전날인 2일 시 주석 내외가 주최한 환영 만찬 때와 같은 순으로 자리 배치가 이뤄진 것이다.

시 주석 왼편에 자리한 중국의 전현직 지도자들의 자리 배치에도 관심이 쏠린다. 왼편 첫 번째로는 장 전 주석, 다음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자리했다. 시진핑-장쩌민-후진타오 등 3대에 걸친 전현직 지도자가 나란히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3명의 전현직 국가주석에 이어 리커창(李克强) 총리,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원회 서기, 류윈산(劉云山) 중앙서기처 서기, 위정성(兪正聲) 정협 주석 등 현직 최고지도부 인사들이 늘어섰다. 원자바오(溫家寶) 주룽지(朱鎔基) 리펑(李鵬) 등 전 총리들도 참석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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