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제히 출간된 가을호 문학잡지들의 초점은 표절이었다. ‘문학과사회’ ‘실천문학’은 물론 ‘말과활’ ‘역사비평’ 등에서도 좋은 원고를 읽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눈길이 가는 건 ‘창작과비평’과 ‘문학동네’였다. 양대 문학잡지인데다 표절 사태 발단이 된 신경숙 소설들을 출간해 돈을 벌었고, 신경숙 문학을 상찬했으며, 문학권력의 당사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잡지를 읽어본 소감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파렴치한 베껴쓰기를 단정하고 거기다 신경숙은 원래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는 자의적 평가마저 곁들여 한국문학에 어쨌든 소중한 기여를 해온 소설가를 매장하려는 움직임에는 결코 합류할 수 없습니다.” 백낙청 창비 편집인이 페이스북에 쓴 이 글은 창비뿐만 아니라 문학동네의 입장과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창비는 표절을 인정하지 않았고 문학동네는 표절을 인정했다는 독해도 있는데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 하지만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창비 입장이다. 문학동네는 “더 분명히 말하자면, ‘전설’은 ‘우국’의 표절이다”라고 했으니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문장이 들어 있는 문학동네 권희철 편집위원의 ‘권두언’은 두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질감과 주제의식의 차이를 보다 강조하고 있고, 문학권력 비판이나 신경숙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해도 창비는 기대 이하였고, 문학동네는 기대 이상이었다. 둘 사이에는 메시지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문학동네는 해명과 반론을 펼치되 진지했으며 정교했다. 또 대표이사와 편집위원들의 사퇴를 결정했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사태를 매우 중히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사퇴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적합한 방식인지, 그렇게 해서 사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순 있지만.
창비는 방어에 급급했고 그나마 불성실했으며, 그로 인해 권력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백영서 편집주간이 쓴 ‘책머리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언급은 3페이지에 불과했고, 이미 발표됐던 3개의 외부 평론가 원고를 옮겨 싣는 데 그쳤다. 그중 한 원고의 부제는 ‘신경숙을 위한 변론’이다. 문학동네는 17페이지 분량의 ‘권두언’을 통해 표절, 신경숙 문학, 문학권력, 상업주의 등에 대한 회사 입장을 밝혔고, 4개의 외부 평론가 원고와 1개의 작가 좌담회를 실었다.
창비는 논리적으로도 부실했다.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는,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얘기를 내세운 뒤, 여기에 따라붙게 마련인 여러 질문들은 묵살했다. 예컨대 의도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다른 사람의 글을 막 갖다 써도 의도성이 없었다면 괜찮은가?
창비는 또 문학권력과 상업주의 비판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았으며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없는 얘기나 모르는 얘기처럼 넘겨버렸다. “어디 한구석 마음 부빌 데 없는 최근 한국사회의 교착에 대한 어떤 울분의 집합적 표출일지도 모르겠다”(최원식),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수많은 국외자를 낳게 했다”(이시영) 정도의 자기반성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창비는 내년에 50년을 맞는다. 우리 사회와 한국문학에 대한 창비 50년의 ‘적공(積功)’이 표절 문제 하나로 간단하게 부정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권력화되고 있는 게 아닌지, 기업화되고 있는 게 아닌지 겸손하게 점검하지 않는다면 창비의 새로운 50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창비 생각
입력 2015-09-04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