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첨밀밀’ 한·중

입력 2015-09-04 00:10

덩리쥔(鄧麗君·1953∼1999)은 이미자에 비견되는 대만 출신 중화권 국민가수다. 중국인들은 라오덩(老鄧)으로 칭하던 덩샤오핑에 견주어 그를 샤오덩(小鄧)으로 불렀다. ‘중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덩리쥔의 노래가 흐른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그가 사망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중국인의 사랑은 여전하다.

그의 대표곡 ‘첨밀밀(甛蜜蜜)’이 2일 한·중 정상회담 오찬장에 울려 퍼졌다. 직역하면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의 첨밀밀은 연인의 사랑을 그린 노래다. 여명과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크게 히트했다. 중국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노래를 들려준 이유를 알 듯하다. 야심차게 준비한 전승절 행사에 주요 서방국 정상들이 불참한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으니 한·중 관계가 첨밀밀인 것을 대내외에 보이고 싶었을 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6월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등관작루’의 시구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경상일층루(更上一層樓)’를 인용했다. 천리를 보기 위해선 누각을 한 층 더 올라야 하듯 한·중 관계도 한층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 방중 당시 두보의 ‘교정로경친(交情老更親·만남이 거듭될수록 친밀감이 깊어진다)’ 시구로 화답했다.

두 정상의 ‘고사(古事)회담’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이 일제에 맞섰던 한·중 두 나라를 ‘환난지교(患難之交·어려움을 함께 한 친구)’라고 하자 시 주석은 ‘중인습시화염고(衆人拾柴火焰高·많은 사람이 장작을 모으면 불이 세진다)’라고 맞장구를 놓았다. 이런 분위기에 취해 청와대가 있지도 않은 “한·중 관계가 역대 최상이다”는 시 주석 모두발언을 만들어낸 건 아닌지. 더불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한·중 밀월에 토라져 남북관계 개선 무드에 어깃장을 놓지 않을까 그것도 걱정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