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하루에 세 번이나 얼굴을 마주했다. 시 주석이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한 30개국 정상 가운데 유독 박 대통령에게만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불참 속에서도 우리나라 정상이 행사 참석을 결정해준 것에 대해 각별한 의전으로 보답한 셈이다. ‘양자 정상회담→양자 정상 특별오찬→한국 정상의 중국 2인자(리커창 총리) 면담→전승절 환영 공식만찬’으로 이어진 과정 전체가 시 주석의 세심한 배려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2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박 대통령과 가진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신뢰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모두발언에서 “한국에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이 있듯 중국에도 ‘많은 사람이 함께 장작을 모으면 불이 커진다’는 말이 있다”며 현재 한·중 관계가 정치적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전 11시51분(현지시간)부터 시작된 양국 정상회담은 예정된 시간을 14분 넘겨 34분간 진행됐다.
정상회담은 이례적으로 순차통역이 아닌 동시통역으로 진행됐으며, 한·중 정상은 속도감 있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34분간의 회담에서 양국 정상 간에 아주 많은 정보가 오갔다”며 “순차통역을 한 것으로 치면 한 시간 넘은 회담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번역 오류로 청와대가 배포한 시 주석의 모두발언 초안에 있던 ‘양국은 역대 최상의 우호관계’라는 언급이 나중에 삭제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청와대 측은 “서두르다 보니 시 주석의 발언을 번역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특별오찬은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낮 12시27분부터 64분간 이뤄졌다. 시 주석이 별도로 단독 오찬 자리를 마련한 것은 박 대통령이 유일하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보통 오찬회담은 마주보고 진행되는데 두 정상은 심도 깊고 내밀한 의견 교환을 위해 나란히 앉아 오찬을 했다”고 말했다.
오찬에서도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의 애창곡인 가수 ‘거북이’의 ‘빙고’를 연주케 사전 조율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행사 음악으로 쓰인 10곡 중엔 ‘빙고’와 ‘아리랑’, TV 드라마 ‘대장금’의 ‘오나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마이 데스티니’ 등 4곡이 한국 음악이었다. 중국음악으로는 시 주석 부인인 가수 출신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의 대표곡 ‘희망의 들판에서’, 가수 덩리쥔(鄧麗君)의 ‘첨밀밀’ 등이 쓰였다.
오찬에는 식전 냉채, 연밥백합탕, 대파해삼찜, 꽃등심스테이크, 황금죽순과 아스파라거스, 국수, 레몬향대구롤, 만두, 과일과 아이스크림, 커피와 차가 차례로 나왔다.
중국 측은 오찬 메뉴판에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사진을 따로 인쇄해 넣고 그 밑에 양국 관계를 상징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무신불립(無信不立)’ ‘번영창조 미래개척(同襄繁榮 共創未來)’을 한글과 한자로 적어 넣었다. 이심전심과 무신불립은 한자와 한글이 같았지만 번영창조와 미래개척은 한자가 달랐다. ‘함께 번영하고 함께 미래를 창조하자’는 뜻의 한자성어를 쓴 것이다. 무신불립은 시 주석이 지난해 7월 방한 당시에도 사용한 표현이다. 그는 당시 언론 기고문을 통해 ‘논어’에 등장하는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無信不立)란 사자성어를 소개하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엔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를 만나 한·중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저녁에는 시 주석 내외가 주최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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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많은 사람이 장작을 모으면 불이 커진다”
입력 2015-09-03 03:41 수정 2015-09-03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