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라면시장 최대 관전 포인트는 프리미엄 짜장라면의 대결이다. 지난 4월 출시된 농심 짜왕이 출시 2개월 만에 220억원의 매출을 거두자 오뚜기와 팔도도 지난 7월 진짜장과 팔도짜장면을 각각 출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업계에선 경쟁사의 신제품이 추가로 시장에 진입해 프리미엄 짜장라면 시장이 더욱 달아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라면 업체들은 오랜만에 열린 새로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TV광고 등을 통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라면시장은 새로운 경쟁에서 승리한 브랜드가 ‘롱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난해 매출 ‘톱10’ 라면 브랜드만 봐도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9위·2012년)을 제외하면 모두 20세기 브랜드다. 1963년 나온 국내 첫 라면 삼양라면이 5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신라면(1위·1986년), 짜파게티(2위·1984년), 안성탕면(3위·1983년), 너구리(4위·1982년) 모두 경쟁에서 살아남은 장수 브랜드다. 최용민 팔도 마케팅팀장은 “지금까지 라면 역사를 보면 살아남는 브랜드가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장 생성 초기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것은 그 때문이다”고 밝혔다.
◇‘소고기라면’ VS ‘쇠고기라면’=1963년 9월 삼양식품이 일본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출시한 삼양라면은 닭고기 국물이 기본이었다. 수프가 닭고기 육수를 바탕으로 했고, 면 역시 닭기름에 튀겼다. 이후 농심의 전신 롯데공업주식회사에서 출시된 롯데라면(65년), 왈순마(68년)도 모두 닭고기 육수를 바탕으로 한 라면이었다. 풍년식품, 신한제분, 동방유량, 풍국제면 등도 잇따라 신제품 라면을 출시했지만 1960년대 말까지 살아남은 것은 삼양식품과 롯데공업 두 회사뿐이었다.
닭고기 국물 중심의 라면이 전환기를 맞은 것은 1970년 10월 롯데공업이 ‘소고기라면’을 출시한 이후였다. 롯데공업은 국내에선 닭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좋아하는 것에 착안해 소고기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삼양식품 역시 ‘쇠고기라면’을 출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롯데공업의 시장점유율은 10%에서 22.7%로 뛰었고 매출 역시 20억원에서 37억원으로 올라갔다. 소고기라면으로 탄력을 받은 롯데공업은 1975년 ‘형님먼저 아우먼저’ 광고로 유명한 농심라면을 출시해 인기를 끈다. 농심라면의 인기를 바탕으로 사명도 롯데공업에서 지금의 농심으로 바꾸고 삼양식품과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다.
◇라면 춘추전국시대 히트작 대거 등장=1980년대는 지금까지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라면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한 황금기였다. 삼양식품에 시장 점유율이 뒤졌던 농심이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점유율 역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농심과 삼양식품 외에 한국야쿠르트(팔도 전신), 청보, 빙그레 등도 라면 시장에 뛰어들면서 기존 제품들과 경쟁에 돌입했다.
1980년대 들어설 때까지 삼양식품에 뒤져있던 농심은 너구리를 시작으로 육개장 사발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 사리곰탕을 잇따라 출시하며 점유율을 급속히 늘렸다. 안성탕면의 경우 시골 장터에서 맛보던 우거지 장국 맛을 재현한 제품으로 발매 3개월여 동안 41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1984년에는 200억원을 넘어섰다. 안성탕면이 히트하면서 지역 이름에 ‘탕면’을 결합한 경쟁 제품도 출시됐다. 삼양식품은 서울탕면, 호남탕면, 영남탕면을 안성탕면의 대항마로 출시했다.
짜장라면은 1970년 롯데공업이 먼저 출시했으나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1984년 짜파게티를 출시하고 난 이후였다. 삼양식품도 짜파게티 출시 이듬해인 1985년 짜짜로니를 출시하면서 개그맨 이경규를 광고모델로 기용해 맞대응했다.
잇따른 히트작에 힘입어 농심은 1985년 3월 라면시잠 점유율에서 삼양식품을 처음으로 앞섰다. 점유율 역전을 당한 삼양식품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9년 우지(牛脂)파동을 겪으면서 점유율이 급감했다. 1997년 7년이 넘는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점유율은 꺾일 대로 꺾인 뒤였다.
농심은 1986년 초대형 히트작인 신라면을 출시하면서 1988년 점유율 50%를 넘기며 1위 사업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농심 외에도 팔도 비빔면(1984년), 오뚜기 진라면(1988년) 등 지금까지 라면 매출 순위 상위에 올라있는 제품들이 모두 1980년대에 출시됐다.
◇“신라면 아성을 무너뜨려라”=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특유의 매운맛을 바탕으로 인기를 끌며 1991년 전체 라면 매출 순위 1위에 올라섰다. 이후 독주체제를 굳혀나갔으나 1990년대 내내 매운 맛을 강조한 경쟁 제품들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1996년 오뚜기 열라면, 1997년 삼양식품 핫라면과 팔도 쇼킹면, 1998년 빙그레 매운콩라면이 모두 신라면에 도전장을 냈으나 신라면의 매운맛을 이기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신라면을 필두로 한 매운맛 라면이 시장을 주도했으나 2011년에는 하얀국물 라면이 급속히 세를 불리면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팔도 꼬꼬면 출시에 맞춰 그 전에 출시됐던 삼양식품 나가사끼짬뽕, 오뚜기 기스면이 하얀국물 라면의 인기를 주도했다. 초창기 라면과 같은 닭고기 육수를 바탕으로 한 꼬꼬면은 한때 대형마트 등에서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지만 이후 시장이 급속히 축소됐다. 2011년 12월 300억원까지 오르면서 정점을 찍은 후 2014년 6월에는 6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라면 시장이 다른 식품업계와 마찬가지로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가 매우 높은 시장이어서 기존 브랜드를 공략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국내에 라면이 도입된 지 52년이 지났지만 라면 매출 1위를 기록한 브랜드는 삼양라면, 안성탕면, 신라면 단 3개밖에 되지 않는다. 최 팀장은 “라면 소비자 입맛이 중간 중간 바뀌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기존의 맛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새로운 맛을 원하기는 하지만 기존 브랜드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쉽지 않아 장수 브랜드가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경제 히스토리] 라면 왕국의 王은 장수하더이다
입력 2015-09-04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