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현 의사 유해 발굴·환국, 정부 나서야”… 증손자 김종식 교수 청원서

입력 2015-09-03 00:53
1933년 중국 하얼빈 남강외인묘원의 남자현 의사 비석 앞에 선 유족과 친지들. 묘비 오른쪽에 서있는 이가 남 의사의 아들 김성삼 선생이다. 오른쪽 위는 하얼빈 문화공원 내 남 의사 묘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아래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마련된 남 의사 가묘의 모습이다. 김종식 교수 제공
“타국에서 서거한 항일투사 남자현(1872∼1933·사진) 의사의 유해가 안장된 대략적 위치는 파악됐습니다. 남 의사의 유해를 조국에 모실 수 있도록 정부가 유해 발굴에 적극 나서 주십시오.”

여성 무장 독립투사 남자현 의사의 증손자 김종식(57) 옌볜과학기술대 교수는 1일 이메일로 국민일보에 청원서를 보내 이렇게 호소했다. 김 교수는 청원서에서 “최근 남 의사의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보이는 장소 2곳을 파악했다”며 “정부가 중국 정부와 협력해 올해로 서거 82주년을 맞은 남 의사의 유해 발굴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유족들이 남 의사의 유해 발굴에 나선 건 1998년부터다. 남 의사의 손자 김시련 선생은 조모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아들 김 교수와 함께 98년 중국 하얼빈 ‘남강외인묘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이 묘지에서 본 건 묘가 아닌 커다란 놀이기구였다. 중국 정부는 58년 ‘도시건설 대약진운동’의 하나로 외국인 묘지 일대를 ‘하얼빈 문화공원(놀이동산)’으로 조성했다. 이때 연고자가 없는 조선인들의 무덤을 시내에서 20㎞ 떨어진 ‘황산 묘지’로 이장했다.

98년 방문 당시 공원 옆에는 높은 담으로 둘러싼 묘지가 있었는데 김 교수가 들어가려 하자 공원 직원이 제지했다. ‘소련 병사들의 무덤’이란 이유에서였다. 김 교수는 “그때 공원 직원이 ‘이곳 묘지는 땅속 깊이 유해가 묻혀 있어서 연고가 없는 조선인 묘는 유해를 그대로 두고 묘비만 옮겼다’고 했다”며 “아버지와 나는 결국 유해를 못 찾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7월 다시 증조모 무덤 터를 찾았다가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공원 직원들이 남 의사의 무덤 사진을 보고 “소련 병사 묘역에서 이 비석을 봤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소련 병사들의 유해가 2008년쯤 황산 묘지로 이장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길로 황산 묘지로 달려간 그는 2008년 이장된 외국인 묘 가운데 증조모의 묘가 있는지 살폈지만 찾지 못했다. 이곳이 아니면 원래 무덤 터에 유해가 남아있을 수 있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무덤 사진과 유해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사진을 하얼빈사범대학 역사학과에 보내 유해 발굴 협조를 부탁했다. 외국인인 자신보다 현지 역사학자가 하얼빈시에 문의하는 게 더 쉬울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얼빈시 화교업무판공실에 유족 명의로 청원서도 보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도 남 의사 유해 발굴에 한국정부가 힘을 보태주길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나선다면 중국도 양국 간 우의와 협력을 상징하는 이 일에 적극 화답할 것”이라며 “대통령께서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이 시점에 82년간 이국땅에 잠들어 있는 항일투사의 유해를 찾는 일에 적극 나서 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