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기업 공채시즌 “네 능력·스토리 보여줘”… 학점 제한·지원자 사진란 없애

입력 2015-09-03 02:27

주요 그룹 하반기 대졸 채용이 시작된다. 그룹별로 4000여명에서 100∼300명까지 신입사원을 모집한다. 30대 그룹을 모두 합쳐도 2만명 정도만이 바늘귀보다 좁다는 대기업 취업문을 통과하게 된다. 국민일보가 삼성 현대차 SK LG 등 주요 그룹 인사 담당자들에게 채용 특징과 선호 인재를 취재했다. 인사 담당자들은 나열식 스펙은 더 이상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는 점, 직무에 대한 능력 평가가 강화되는 추세라는 점, 창의성·열정·인성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 등을 하반기 채용의 핵심 포인트로 지적했다.

◇직무 관련 능력 강화=영어, 봉사활동 등 일반적인 스펙보다 직무 관련 능력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됐다. 삼성은 직무적합성 평가를 새로 도입했다. 에세이와 직무 관련 수상경력, 전공 등을 보는 일종의 서류전형이 20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2일 “지원자가 해당 직무에 대한 역량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성취한 내용을 보려는 것이며, 직무와 무관한 스펙은 일절 반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직무적합성 평가 도입으로 기존 3단계 채용 과정이 ‘직무적합성 평가-삼성직무적성검사(GSAT)-실무면접-창의성면접-임원면접’의 5단계로 복잡해졌다. 현대차도 인적성 검사(HMAT)를 통과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핵심 역량 면접과 직무역량 면접을 실시한다.

포스코는 ‘직무 에세이’를 신설했다. 지원하는 직군과 관련해 학습한 내용이나 동아리 활동, 취미 등을 작성해 제출하는 과정이다. 면접도 기존 4단계에서 직무적합성 면접을 기본으로 하는 2단계로 축소했다. LG는 연구·개발(R&D) 직군 채용 시 전공 평균성적 및 전공학점 이수에 가점을 부여한다. 한화는 계열사별로 채용을 진행하며 단기간에 준비하기 힘든 전공 지식이나 직무 능력을 주로 묻는 면접 비중이 높아진다. 효성은 면접 시 직무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한다. 지원자가 직무와 관련한 전문성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신세계 역시 지원자가 직무에 대한 차별화된 능력과 경험을 소개하는 ‘드림스테이지’를 강조하고 있다. 지원자에게 10여일 전 주제를 알려준 다음 그 주제로 면접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임병선 상무는 “스펙만 뛰어난 인재가 아니라 도전정신과 열정, 건강한 주관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건전한 자기 주관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방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스펙은 가라”=삼성은 기존에 존재했던 학점제한 기준(4.5 만점에 3.0 이상)을 하반기 공채부터 폐지했다. SK는 이번 채용부터 외국어, 해외경험, 업무경험, 논문 내용 등 대부분의 스펙성 항목을 제외했고 지원자 사진도 없애버렸다. SK 인사 담당자는 “좋은 학교, 높은 학점과 어학 점수가 가점을 받는 시대는 끝났다”며 “자신만의 차별화된 스토리를 기업의 인재상과 연결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류전형-인적성검사-면접 3단계로 채용을 진행하는 LG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입사지원서에 직무와 관련 없는 공인 어학성적 및 자격증, 수상경력,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 스펙 관련 입력란을 없앴다. 대신 적성검사 시 한국사와 한자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 신입 공채 950명을 선발하는 롯데도 입사지원서에 어학, 수상경력, 동아리 활동 등 직무와 무관한 항목을 삭제했고 직무와 관련 없을 경우 어학 점수와 자격증 제출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롯데는 공채 인원의 40%를 여성으로 선발하며 2011년부터 실시해온 학력 제한 완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 인사 담당자는 “과도한 스펙 쌓기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능력 중심 채용을 더욱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의성과 인성 강조=삼성은 이번 공채부터 창의성 면접을 새롭게 도입했다. 지원자가 제시된 과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발표하고 면접위원이 추가 질의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지원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논리 전개 과정을 평가하겠다는 의도다. 삼성 임원은 “창의성을 돌출행동이나 비상식적 행위로 잘못 이해하는 지원자가 많다”며 “합리적 논리를 가진 창의성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고위 임원은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며 “면접에서는 결국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인성과 열정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SK 인사팀 관계자는 “의무적인 인턴과 공모전 대신 하고 싶거나 알고 싶은 분야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온 사람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라고 귀띔했다.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나열하는 행위는 위험하다는 게 인사 담당자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다. SK 관계자는 “능력과 경험 나열은 ‘저는 모든 것을 잘하니 뽑아주세요’라거나 ‘이 회사를 위해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라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남도영 노용택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