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베풀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세상에서 뿐일까. 믿는 사람들에게는 ‘섬기면 복이 있다’는 말씀이 불문율처럼 전해 내려온다. 미래목회포럼 대표인 분당한신교회 이윤재(61) 목사의 집안 얘기가 그렇다. 증조모에서 5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대물림은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한결같다. 희망의 기초는 믿음에서 나오고 행복한 가정에 깃드는 법이다. 크리스천의 최고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 그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일보 종교국 회의실에서 만난 이 목사는 “증조할머니의 작은 섬김이 우리 집안에 복음이 들어온 통로가 되다니 신기할 따름”이라면서 “섬기면 복이 온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청상과부 증조모 선교사에게 쪽복음 받아=이 목사는 6·25한국전쟁 휴전 조인식이 체결된 해 전북 남원의 한 시골 예배당에서 태어났다. 모친이 5일장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산통이 오자 부른 배를 움켜잡고 교회당 문을 연 것이 훗날 이 목사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됐다.
이 목사 선조의 고향은 경남 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원에서 함양으로 넘어가는 지리산 자락이다. 1890년대 당시 집에는 이 목사의 증조부가 일찍 별세하고 증조모만 계셨다. 4남매를 키워야하는 청상과부는 살기 위해 힘겨운 결단을 내렸다. 남원에서 함양으로 내려가는 높은 언덕에 나그네를 상대로 음식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 시절엔 여자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마침 선교사들이 금강으로 들어와 내륙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때였다. 한 번은 미국 선교사가 말을 타고 이 길을 지나가다가 밤이 어두워지자 이 목사의 증조모집에 유숙하게 됐다. 안 주인은 서양에서 온 낯선 사람에게 음식을 극진히 대접하고 잠자리를 살폈다.
그런데 선교사가 아침에 떠나면서 놓고 간 선물이 있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었다. 이 목사의 증조모는 그 책을 더듬거리고 읽었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몇 달이 지나 또 선교사가 지나가자 그에게 이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설명을 들고 그 자리에서 결신자가 됐다.
그러다가 전주에 신흥학교라는 미션스쿨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증조모는 4남매 중 둘째를 학교에 보냈는데 이 분이 이 목사의 할아버지로 신앙을 2대째 물려받았다. 이 목사의 부친은 남원상동교회 장로였지만 청소년이었던 이 목사는 알 수 없는 반항심으로 교회 나가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다.
◇서울법대 진학꿈 연탄가스 중독으로 물거품=유신정권 당시 명문 전주고에 입학한 이 목사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던 집안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서울대법대에 들어가 판검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예비고사를 코앞에 두고 그만 하숙집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돼 시험도 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 목사는 다음 해 전북대 영문과에 들어갔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25세 때 기도원에 들어가 불같은 성령을 받고 세속적인 삶을 정리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작정했다. 서울신대와 연세대연신원과 한신대 신대원, 이스라엘 예루살렘대학(Jerusalem University College),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대원과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등에서 공부한 이 목사는 10년 전 ‘별세신학’으로 유명했던 고(故) 이중표 한신교회 목사의 뒤를 이어 분당한신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세월호 참변 후 전한 ‘희망의 메시지’ 책으로= 최근 ‘이제 희망을 말하자’(쿰란출판사)를 펴낸 이 목사는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낙심과 절망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작으나마 희망의 빛을 비추라’는 하나님의 감동을 느끼고, 그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교회에서 선포한 ‘희망의 메시지’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한국교회에 주는 영적 사건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깊은 바다에 빠져 있다는 것과 우리가 침몰한 것은 사실 배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목사는 그래서 올해 교회 표어를 아예 “평화의 주님, 희망으로 오시옵소서”로 정했다. 절망의 시대에 어렵사리 붙잡은 구호였다.
“지금 넘어진 자리가 전환점입니다.” 이 목사는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로 은퇴한 스티븐슨 교수가 40년 교수 생활을 총정리해서 내놓은 10가지 지혜 중의 하나를 소개하면서 절망의 시대를 건너가자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위기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했다. 교회는 성장을 멈추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침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80% 이상이 교회학교가 없거나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교회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10% 안팎으로 추락한 것은 더욱 절망으로 몰아세우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는 성장을 멈추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침체하고 있는 위기에 있지만, 이 절망의 시기는 한편으로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향해 예비하신 위대한 전환점이라 믿는다”며 “전환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성경적 희망을 발견하는 것과,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는 세상 이야기를 넘어 성경 이야기를, 사실이 아니라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며 “우리 모두 지금 넘어진 그 자리를 전환점 삼아 다시 일어났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처럼 하나님은 절망의 숲에 전환점이라는 빵을 여기저기 떨어뜨려 놓으셨습니다. 전환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성경적 희망을 발견하는 것과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앞에 다가온 절망 앞에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희망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들어야 살며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겔 37:5).”
책은 ‘희망의 기초, 믿음’, ‘희망의 보금자리, 가정’, ‘희망의 영성, 교회’, ‘희망의 현장, 세상’ 등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6편의 설교를 담았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저자와의 만남-‘이제 희망을 말하자’ 펴낸 이윤재 목사] “지금 절망은 희망으로 가는 전환점”
입력 2015-09-04 00:55 수정 2015-09-04 1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