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빵으로 오병이어 재현, 배고픈 자 먹일 것”… 요리로 남을 위로하는 삶 이유석 셰프

입력 2015-09-03 00:28
서울 강남구에서 레스토랑 ‘루이쌍끄’를 운영하는 이유석 셰프가 지난달 31일 주방에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우리 주변엔 말 못할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레스토랑 ‘루이쌍끄’를 운영하는 이유석(34) 셰프는 자신이 요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가게에서 이 셰프를 만난 건 지난달 31일 오후 3시. 가게 문을 열기 전 한 직원이 바닥을 쓸고 있었고 부주방장은 레시피를 연구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은 재즈나 샹송이 어울릴 것 같았지만 CCM이 흘러나왔다. 손님이 오면 분위기에 맞게 배경음악을 바꾼다.

◇눈물에 젖은 바게트=이 셰프는 2006년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곳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위해 남부 루아르 지방으로 떠나는 날, 그는 여행가방 3개와 6개월치 생활비를 전부 잃어버렸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하루 프랑스 유학생 인솔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한 게 화근이었다. 유학생들을 챙기느라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승합차에 자신의 짐을 싣지 못한 것이다. 남은 건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여권과 70유로가 전부였다. 이 셰프는 그날 이후 몇 개월 동안 0.6유로짜리 바게트만 먹었다. “바게트가 가장 싸고 양 많고 배부른 음식이었어요. 하루 지나 딱딱해진 바게트를 먹으면서 입 안이 헐기도 했죠.”

이 셰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인근 한인교회 교인들이었다. 교인들은 그의 어려움을 알고 찾아와 이불 담요 컵 속옷 등 살림살이를 챙겨줬다. 그때를 계기로 발길을 끊었던 교회를 다시 다니게 됐다. 타지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위로는 특별했다. 이 셰프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인교회 교인들 덕분에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분실 6개월 만에 공항 분실물센터에서 잃어버렸던 짐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저는 수많은 사람들 앞이었지만 무릎을 꿇고 짐을 부둥켜안은 채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짐이 아니라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의 손목엔 커다란 상처가 있다. 프랑스에서 성탄절 전날 밤 유리 파편에 베이면서 생긴 상처다. 수건으로 손목을 감싼 채 응급실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순간 현지인이 몰던 차 한대가 멈춰 섰고, 이 셰프를 병원으로 데려다줬다. 의사는 수술을 마친 뒤 “조금 더 늦었으면 요리를 못하게 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병원을 나오니 거리엔 성탄음악이 흘렀다. 이후 손목의 상처는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게 해주는 징표가 됐다.

◇맛있는 위로=받은 위로가 큰 만큼 이 셰프는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가 남을 위로해 주는 방법은 요리다. 아내와 사별한 50대 남성에게 아내가 자주 해주던 ‘오믈렛’으로 그리움을 덜어줬고, 낙방을 거듭하던 취업준비생에게 ‘쇼콜라’로 인생의 씁쓸함을 잊게 해줬다. 가난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후배에게는 ‘스페셜 코스요리’를 대접해 멋있게 청혼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 셰프는 2012년에 이런 이야기들을 담은 책 ‘맛있는 위로’를 출간했다.

그는 요즘 보리떡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성경을 보며 ‘오병이어’에 나오는 보리떡의 맛이 어떨지 궁금했고, 이스라엘 서적까지 뒤지며 레시피를 찾았다. “레시피를 보니 떡보다는 빵에 가깝더라고요. 예수님이 보리떡과 생선으로 배고픈 자들을 먹이셨듯이 저도 ‘보리빵’으로 불우이웃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과점을 운영하는 사촌동생과 ‘보리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