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씨킴 회장의 통 큰 공공미술

입력 2015-09-03 00:20

기업가에게 고맙다니. Y씨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천안 기반의 ㈜아라리오 김창일(64) 회장에 대해서다. 충남 천안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1980년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났다.

“어느 해였던가. 천안에 갔더니 그 조각공원이 있는 거야. 그게 다 어마어마한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라지 뭐야.”

속칭 ‘야우리’로 불리는 신부동 복합문화공간 중앙에 조성된 조각공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복합문화공간은 영문 이니셜을 따 ‘씨킴(Ci Kim)’으로 불리는 김 회장의 말마따나 그의 ‘스몰 시티’다. 백화점, 터미널, 영화관, 갤러리가 ‘ㄷ’자 형태의 건물로 연결돼 있다. 중앙 광장에 데미안 허스트, 키스 해링, 수보드 굽타 등 유명 현대 미술가들의 대형 조각 작품이 30점 가까이 설치돼 있다. 값으로 따지면 모두 400억∼500억원은 될 조각 작품들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크다. 말하자면 서울시가 구입한 청계천의 명물 ‘골뱅이 조각’(클래스 올덴버그 ‘스프링’) 같은 게 개인이 조성한 공원에 무더기로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탁월한 사업가다. 1978년, 모친이 인수한 천안시외버스터미널의 매점 운영을 맡았다. 27세 때였다. 냄새 퀴퀴했던 터미널은 10년 만인 1989년 현재의 외형으로 탈바꿈했다. 조각공원도 그때 생겨났다. 아라리오갤러리 건물에 부착된 대형 방탄유리 안에는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Hymm)’가 있다. 내장이 드러난 병원용 인체 모형을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조각은 원래 실내용 작은 조각이다. 김 회장은 2002년 작가에게서 살 때 “천안 시민 덕분에 이만큼 기업이 성장했다. 시민들이 늘 볼 수 있게 밖에 두고 싶다”며 방탄유리 설계도면까지 보여주며 야외용으로 새로 만들어줄 것을 설득했다.

사업가인 그는 세계적 컬렉터다. 화랑과 미술관도 운영한다. 작가이기도 하다. 어떤 이력보다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기업과 문화를 접목하는 경영 방식 때문이다. 문화는 힘이라고들 한다. 그는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실천해 왔던 것이다.

“좋은 작품은 미술관 안에 모셔두고 입장료 받고 그러잖아. 그걸 모든 시민이 볼 수 있는 거리에 개방한 발상 자체가 정말 고마워.”(Y씨)

정부는 ‘1%법’(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짓는 건축주에게 미술 장식품 설치를 의무화)을 통해 공공미술을 강조한다. 마지못해 정체불명의 조각품을 세워두는 기업, 혹은 건축주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김 회장식 ‘통 큰’ 공공미술 실천이 놀랍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지방 작은 도시에서의 실천이라는 데 있다.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은 문화의 수도권 집중을 불러왔다. 지방도시의 문화적 소외는 국가적으로도 문제다. 지방도시는 점차 소멸되어가는 추세다. 결혼해 서울에서 살던 Y씨는 2년 전부터 남편 직장을 따라 천안 인근 도시 평택에서 살고 있다.

“평택에는 변변한 미술관, 갤러리 하나 없어. 많이 아쉬워. 그래서 아라리오가 있는 천안이 다시 보이더라고.”

미술을 접목한 김 회장의 사업 방식이 매출에 끼친 효과를 수치로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건 확장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제주시의 쇠락해가던 구도심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10년 이상 방치된 폐건물을 사들여 미술관으로 꾸몄다. ㈜아라리오의 사례가 다른 재벌,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건 요원할까. 대부분 기업에 고객은 말만 왕이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소비의 주체로만 바라본다. 아라리오의 사례를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21세기적 모델로 주목하고 싶다.

손영옥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