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무엇일까요? 교과서에서 익히 배운 내용이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직지심경'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줄여서 '직지'라고 불리는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지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은 직지(1377년)이고, 금속활자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경활자(1455년)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증도가자(證道歌字)’라는 이름이 붙은 금속활자입니다. 2010년 9월, 총 101점인 저의 존재가 드러나자 학계에서는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제 나이가 직지보다 최소 138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년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됐거든요. 저의 신분이 확실해진다면 역사 교과서는 물론이고 세계 금속활자의 계보가 바뀌는 상황이니 얼마나 획기적인 사건이겠습니까!
저는 원래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고미술상 다보성의 김종춘 관장이 10여년 소장하고 있었죠. 그러다 경북대 남권희(문헌정보학) 교수가 6년간의 연구 끝에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고 주장하고, 소장자가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면서 화제를 모았죠. 그동안 진짜다 가짜다 격론이 오가다 지난 2월 문화재위원회에서 공식 심의키로 결정해 추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제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랍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에는 당초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을 1239년 목판으로 번각(飜刻·책을 뒤집어 목판을 새긴 다음 다시 찍음)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곳의 글자와 저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明(명) 切(절) 時(시) 行(행) 心(심) 大(대) 등 52개가 거의 일치합니다.
서체도 구양순체로 동일하고 크기(가로 10∼16㎜, 세로 10∼14㎜) 역시 비슷하다는 겁니다. 고려시대 활자는 구리와 주석을 주성분으로 철, 납, 아연 등이 소량 함유돼 있는 게 특징이랍니다. 저에 대한 주조 방법과 성분 분석 결과 101점의 합금 비율(구리 70∼80%, 주석 15∼20%, 납 1∼15%)이 고려시대의 특성을 띠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지학적으로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뒷면의 형태로 시기를 구분합니다. 활자 뒷면 중간 부분을 움푹 파서 활자판에 고정시키는 ‘홈형’은 11∼12세기, 4개 모서리에 다리를 단 ‘네다리형’ 활자는 13∼14세기에 제작됐다고 판단합니다.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아 각 분야 전문가 32명이 저의 분신 101점을 조사했지요. 그 결과 62점이 홈형이었답니다.
두 번째 근거는 활자에 묻은 먹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결과입니다. 2011년 11점의 활자를 측정한 결과 13세기 초의 것으로 나왔고, 2013년 서울대에서 다시 분석한 결과는 1150∼1300년으로 측정됐습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진위 조사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겼지요. 이 조사에서도 탄소연대는 1033∼1155년으로 나왔답니다.
먹이 이 무렵 것이므로 그것이 묻어 있는 저 역시 제작 연대를 그 무렵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를 두고 고려시대의 먹을 후대에 묻혀 조작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들을 합니다. 물론 탄소연대가 저의 탄생 시기를 확인하는 결정적 증거는 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위조에 쓸 만큼 지금까지 고려시대 먹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먹 조작은 억측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증도가’에 사용된 금속활자는 ‘증도가자’가 틀림없고 최소한 1239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공인을 받으면 1377년 간행된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보다 138년 이상 앞선다는 얘기죠. 물론 문제는 있습니다. 가장 큰 의문점은 출처와 입수 경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저의 족보와 출생의 비밀을 잘 모릅니다. 제 주인인 다보성 측은 애초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신청을 하면서 “대구의 고미술상에게서 구입했다”고 기록했다는군요. 그러면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사들여 국외로 반출한 것을 1995년 대구의 고미술상이 구입했으며 이후 몇 차례 소유주가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는 거지요.
고미술품 상인들은 ‘증도가’를 고려왕실에서 주로 읽었다는 사실로 보아 왕성인 개성 만월대의 도난품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이에 대해 다보성 측은 “국보와 보물 중 출토품을 제외하고 출처가 확인된 게 몇 점이나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구입 이후 줄곧 전문적인 조사와 연구를 해왔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합니다. 현재 저는 도난 우려 때문에 모 금융사의 금고에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문화재청이 용역 의뢰한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연구 책임자가 최초의 금속활자라고 처음 주장한 남권희 교수라는 겁니다. 자신의 주장을 자신이 검증하는 연구여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지요.
문화재위원회는 탄소연대 측정과 활자 서체, 금속성분 분석 전문가 10여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을 꾸려 6월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증도가’의 금속활자는 있지만 인쇄본이 남아 있지 않은 게 한계이기는 합니다. ‘직지’는 활자가 없는 대신 인쇄본이 존재하니까 제가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정받을 경우 한국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와 인쇄본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는 셈이죠.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는 9월에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논란이 확산될 경우 좀 더 걸릴 수도 있다고 하네요. 자칫 잘못하면 국제적인 망신을 살 수도 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요. 또한 공연히 흠집 내는 소리에 휘둘려서도 안 되겠지요. 더욱 심도 있는 연구와 근거 자료 발굴을 통해 세계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나 우리나라 인쇄술의 가치를 공인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슬로 뉴스] 흔들리는 ‘직지의 꿈’… 고려史 새로 쓰나
입력 2015-09-11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