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물자 지원의 포문을 먼저 연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1984년 9월 남쪽에 큰 수해가 나자 쌀 7200t이 포함된 구호물자 지원을 제안했다. 1년 전 발생한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대북 여론이 최악인 상황이었다. 북측의 생색내기용 의도를 잘 알면서도 전두환정부는 북측의 제의를 전격 수용했다. 이후로 이산가족 고향 방문, 장세동 안기부장의 김일성 주석 면담 등이 이어지며 남북 교류의 물꼬를 텄다.
남측의 첫 물자 지원은 김영삼정부 때다. 1995년 6월 이석채 재정경제원 차관을 베이징에 비밀리에 보내 1차로 쌀 15만t을 인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동해 잠수함 침투, 황장엽 망명 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는 오히려 얼어붙었다. 김영삼정부의 조급함이 부른 참사였다. 김대중정부는 매년 쌀 30만∼40만t씩을 지원했고, 노무현정부도 비슷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2008년 이후 군사용 전용 가능성과 분배의 불투명성을 들어 쌀 지원을 중단했다.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지난 8월 25일은 7년간 남북 간 교류 공백을 단숨에 뛰어넘은 역사적 날로 기록될 만하다. 43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이산가족 상봉, 당국 간 대화 채널 복원, 민간교류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런데 남북의 태도가 예전과 사뭇 다르다. 고위급접촉 북측 대표였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는 차치하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까지 나서 합의 이행을 천명했다. 짤막하게 회담 결과만 보도했던 과거와는 너무 다른 행보다.
우리 정부의 행보는 아예 낯설다. 국민 10명 중 6명이 합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50% 선까지 치솟았지만 내놓은 카드는 속도조절론이다.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다. 회담 합의 뒤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던 과거 정부와는 판이하다. 북한이 향후 회담에서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실리를 얻어내려는 데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맞춰 장거리 로켓 발사 시험을 할 경우라는 캘린더 상황도 고려했음 직하다. 줄줄이 이어진 대형 외교 이벤트도 고려 대상이다.
그런 탓인지 신중해도 너무 신중해 오히려 소극적인 느낌마저 풍긴다. 북한은 최근 함경남도 나선시에 내린 폭우로 40여명이 사망하고 가옥 1000여채가 파손됐다는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피해 사실을 즉각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요청이 있으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지원 문제를 검토 대상으로 미뤘다. 지난여름 북한에 대형 수해가 났을 때도 “북측의 요청이 오면”이라고 했고, 5·24조치 해제 논의 역시 “북한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관점처럼 남북관계는 관리가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의 현 태도는 북한 도발 같은 상황 위기관리에만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제는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관리가 아닌 상황을 주도하는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 북핵에 발목 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리가 아닌 우리만의 대북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고리가 있어야 한다. 북핵과 도발 문제는 안정적으로 관리하되 인도주의 남북교류 등에선 물꼬를 트는 투트랙 전략이다. 북한의 수해와 가뭄에 선제적으로 지원 의사를 먼저 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북한의 요청이 있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지 말고서다. 남북 합의라는 달콤한 향기에 취해 샴페인을 꺼내들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새로운 선제적인 대북전략 수립이 우선이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영석] 선제적 대북전략 수립이 우선
입력 2015-09-03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