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나침반] 당뇨병 이기려면 약 공포부터 이겨라

입력 2015-09-07 02:55

“약 복용을 미룰 수 없을까요? 운동과 식사 요법을 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운동 요법과 식사 요법으로 나름 혈당을 관리하다 당뇨병 약을 처방받게 된 초기 당뇨병 환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이 환자는 운동요법과 식사요법을 더 열심히 해서라도 약 복용을 늦추길 원했는데, 당뇨병 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 ‘심혈관계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뇨병 약제를 처음 처방 받는 환자들 중 상당 수가 이러한 우려 때문에 복용을 미루거나 복용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이러다 보니 당뇨병 초기 환자들 중 약물 요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실제 당뇨병 약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첫 해에는 약 30%의 환자만이 혈당강하제를 제대로 복용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당뇨병 약제는 일단 먹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는 약이 결코 아니다. 신체 자체적으로 혈당을 충분히 조절할 수 없게 돼 고혈당이 지속되는 경우, 혈당을 낮추기 위해 꾸준히 복용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당뇨병을 유발하는 인슐린 저항이라는 병인 자체를 개선하거나, 당뇨병 조절 기능 자체가 스스로 쇠퇴해가는 경과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서 혈당에 상관없이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복용을 시작했더라도 추후 혈당 조절이 개선된다면 복용을 중단할 수 있다. 실제 당뇨병 초기 약을 복용했던 환자들 중 꾸준한 관리로 약물의 도움 없이 운동 요법과 식사 요법만으로 당뇨병을 관리할 수 있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당뇨병은 점차적으로 나빠지는 진행성을 갖는 만큼 발병 후 고혈당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약제를 복용해야 혈당이 조절된다.

당뇨병 환자들이 약제 복용을 주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심혈관계 관련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뇨병 환자들은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 발생에 취약하며, 당뇨병이 없는 이들에 비해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이 두 배에서 네 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당뇨병 자체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 요인이며, 당뇨병 환자들이 고혈압과 고지혈증 등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위험 요인들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뇨병 치료시 혈당조절 외에도 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 위험을 감소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수 년전 한 당뇨병 약제가 심혈관 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해당 약제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증거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판매 제한도 해제됐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당뇨병 약제의 심혈관계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강화됨에 따라 모든 당뇨병 약제는 혈당 조절 효과와 함께 심혈관계에 안전성을 입증 받아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당뇨병 약제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연구들은 대개 당뇨병 환자들 중에서도 심혈관계 질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연구 결과들이 대부분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처방되는 DPP-4 억제제인 시타글립틴 성분 약제가 심혈관계 병력을 가진 당뇨병 환자 1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대규모 연구를 통해 심혈관계 안전성을 입증 받은 바 있다.

당뇨병 전문의로부터 약물을 처방 받은 환자들은 약물의 효용성과 안전성을 이해하고 복용 지침에 따라 제 때, 제대로 복용해야 한다. 당뇨병 관리는 식사 및 운동 요법이 기본적으로 강조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론 약물 복용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약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부정확한 정보로 복용 시점을 미루게 되면 당뇨병이 악화돼 보다 강화된 약물 요법으로 당뇨병 관리를 시작해야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김동선 한양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